"삼성에서는 꼬리밖에 될 수 없는 사업이 한화로 넘어갈 경우 머리로 대접받을 수 있고 경쟁력도 생긴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딜입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17년 만에 성사된 삼성그룹의 '빅딜'에 대한 재계 한 관계자의 평이다.
석유화학과 방위산업은 한때 삼성그룹이 사업 기반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업이다.
하지만 애플, 구글 등과 어깨를 겨누는 글로벌 IT·전자 기업으로 성장한 지금의 삼성 입장에서 석유화학과 방위산업은 의미를 두기 어려운 사업이 됐다.
해당 기업의 자체 역량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데다, 그룹 차원에서는 미래 생존을 위해 어느 때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자원을 투자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삼성의 모태기업인 옛 제일모직의 경우 패션사업을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에 넘기고 남은 소재 부문은 삼성SDI와 합병시킴으로써 활로를 찾았다.
하지만 석유화학과 방위산업은 그룹 내부적인 사업구조 재편만으로는 활로를 찾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외부 매각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그룹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테크윈의 매각 파트너로 한화그룹을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 석유화학과 방위산업을 주력 사업으로서 삼고 있어 인수 후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최적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인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삼성종합화학을 인수하는 한화케미칼은 현재 한화그룹 내에서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테크윈을 인수하는 ㈜한화는 한화그룹의 모태기업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방위산업체다.
한화그룹은 이번 삼성 계열사 인수로 재계 서열 9위로 올라서게 됐다.
아울러,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은 주요 사업 영역에서 겹치는 부분이 없어 상호 견제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이번 빅딜이 성사되는 주된 배경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삼성과 한화는 그동안 드러난 협력 관계는 없지만 갈등도 전혀 없었다.
양측 계열사 간의 거래는 삼성테크윈과 ㈜한화가 무기류 부품을 상호 공급하는 연 300억원 수준의 거래가 전부였다.
삼성그룹이 해당 사업의 성격상 반드시 국내에서 매각 파트너를 찾을 필요가 있다 해도, 다른 주력 사업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대기업을 파트너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번 매각 협상은 한화 측에서 먼저 공식적인 제안이 들어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전에 양측간에 상당한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그룹이 올 상반기 삼성석유화학을 삼성종합화학과 합병한 것 등도 이번 매각을 염두에 둔 사전 준비였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협상에 평소 친분 관계가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라원 영업실장(CCO)이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협상이 수개월 만에 타결되면서 속전속결로 진행될 수 있었던 데는 두그룹이 갈등이나 경쟁의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재계 관계자는 "결국 무엇보다 양사의 사업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빅딜이 성사된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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