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최저학력기준에 중대 변수… 의대 수백명 당락 영향 미칠 듯
정시에선 표준점수 최대 2점 하락… 타 과목 선택자보다 경쟁력 밀려
복수정답 처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긴 했지만 올해 대입에서의 파장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 될 전망이다. 공통과목인 영어 25번의 경우 복수정답 처리가 대입 판도에 미치는 큰 영향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생명과학Ⅱ 8번은 이 과목을 선택한 수험생들 간의 희비가 크게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생명과학Ⅱ는 의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과목이어서 의대 입학 여부를 놓고 자연계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질 전망이다. 의대 수시모집에서만 100~500명 정도가 복수정답으로 인해 당락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시모집에선 생명과학Ⅱ 과목을 선택한 것만으로도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일부 입시전문가들은 지적했다.
24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생명과학Ⅱ 8번 문항에 대해 복수정답을 인정하면서 자연계열 학생들의 대입 수시와 정시 모집에 혼란이 예상된다. 우선 수시에서는 등급이 상승하는 학생들과 하락하는 학생들 간의 명암이 엇갈릴 전망이다. 대부분의 입시업체들은 생명과학Ⅱ 복수정답 처리로 등급이 상승하는 학생들이 4,000명 안팎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늘교육의 경우 복수정답 처리에 따라 등급이 상승하는 학생들이 4,240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3등급 이내 진입이 예상되는 인원도 1,479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 상위권 대학이 2~3등급 이내로 최저학력기준을 정하고 있어 등급이 상승한 수험생들에게는 호재가 될 수 있다.
특히 수시모집에서 의대가 요구하는 최저학력기준 충족 여부에 영향받는 수험생들도 수백명에 달할 전망이다. 의학전문대학원의 의대 전환으로 정원이 늘어난 의학계열은 올해 입시에서 수시 모집으로 1,136명(49.7%), 정시모집으로 1,151명(50.3%)을 선발한다. 의예과의 경우 수시 최저학력기준은 ‘3과목 6등급 이내’가 많고, 과학탐구의 경우 1등급 조건이 붙은 경우도 있다. 하늘교육에 따르면 복수정답 인정으로 1등급으로 상승하는 수험생은 430명, 2등급으로의 상승자는 510명으로 예상된다. 반면 1등급에서 2등급으로 하락하는 경우는 40명, 3등급으로 하락해 불합격이 유력한 경우는 178명에 달할 전망이다. 진학사는 각 의대의 최저학력기준과 등급 변화 등을 고려할 때 400명 가량이 당락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기존 평가원 제시 정답을 맞혔거나 복수정답을 선택하지 않은 오답자의 경우 기존보다 등급이 하락하는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 하늘교육은 이처럼 오히려 등급이 하락하는 수험생이 2,004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진학사의 경우 등급 상승 인원은 3,448명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1~2등급으로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오히려 등급 하락 인원이 6,162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특히 1등급에서 2등급으로의 하락이 438명, 2등급에서 3등급으로의 하락이 781명, 3등급에서 4등급으로의 하락 669명 등 당초 1~3등급에서 하락한 인원만 2,000여명에 육박해 이들이 수시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복수정답 인정으로 최저학력기준과 관련된 논란 발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전체 평균점수가 올라 기존 정답자 및 최종 오답자들은 표준점수와 등급이 떨어져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시 모집에서는 생명과학Ⅱ를 선택한 수험생들이 다른 과목을 선택한 수험생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복수정답으로 전체적인 원점수가 상승하면서 표준점수가 하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복수정답 처리 후 생명과학Ⅱ의 표준점수가 최대 2점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타 과목 선택자들에 비해 경쟁력 하락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정시에서 표준점수를 그대로 적용하는 대학은 25.9%에 달하며 대부분 중상위권 대학이어서 복수정답 처리로 표준점수가 낮아진 생명과학Ⅱ 선택 학생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고려대 등 최상위권 대학의 경우, 표준점수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타 과목과의 형평성을 위해 백분위에 근거한 변환표준점수를 사용하지만, 평가원 제시 정답을 맞혔던 학생들은 표준점수가 하락하면서 백분위까지 떨어질 수 밖에 없어 타 과목 선택자보다 불리해진다.
이런 영향으로 이번 수능에서 자연계열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변별력은 크게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는 “의예과, 치의예과, 한의대를 지망하는 최상위권의 경우 영어, 수학이 쉽게 출제돼 생명과학Ⅱ 등 과학탐구 과목에서 변별력을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김희동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정시모집에서는 현재 최상위권 수험생(서울대 및 의대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응시하는 조합인 ‘화학I+생명과학II’에서 생명과학II의 복수정답으로 인해 변별력이 기존보다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복수정답 처리로 유불리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불이익을 봤다고 생각하는 수험생들이 평가원을 상대로 소송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연구실장은 “자연계열 최상위권은 한 문제 차이로 합격 여부가 갈리기 때문에 수능 출제가 잘못돼 대학에서 떨어졌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다수 나올 수 있다”며 “이들이 집단소송에 나설 경우 수능 오류 논란은 또 다른 후폭풍에 휩싸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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