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감소해오던 원자력 홍보 예산이 슬그머니 늘었다. 관련 기관과 정부가 ‘눈치껏’ 감액해 제출한 내년 예산안을 국회가 ‘알아서’ 늘려준 모양새다. 월성과 고리 1호기 계속운전, 경주 중ㆍ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 사용허가 등의 심사가 진행 중인 민감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원자력 홍보에 세금을 더 쓰겠다는 정부의 속내가 드러난 셈이다.
원자력 홍보 예산은 전기요금에서 나온다. 전기요금의 약 3.7%가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들어가 전력수요관리와 연구개발, 전력산업 홍보,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 등에 쓰인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전력산업 홍보 예산은 78억원. 그 중 자그마치 68%인 53억9,300만원을 원자력 홍보에 들이겠다는 계획이다. 그나마 줄어든 금액이 이 정도다. 원자력 홍보 예산은 전액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쓰는데, 후쿠시마 사고 전엔 연 100억원 가까이 가져가다 2012년 85억원, 지난해 76억원, 올해 56억원으로 계속 씀씀이를 줄였다.
그런데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되레 이 예산을 정부안보다 10억원 늘리자고 의결했다.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이 공공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명분으로 증액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이 반발하자 이달 20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는 원자력 홍보 예산안을 보류했지만, 23일 예산안조정소위 소소위가 결국 상임위 안대로 63억9,300만원을 확정했다. 소소위는 소위와 달리 속기록이 공개되지 않는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처음으로 원자력 홍보 예산이 증가했는데, 그 과정도 이유도 비공개인 셈이다.
원자력문화재단이 원자력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켜 홍보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계속돼왔다. 최근에는 초ㆍ중ㆍ고 교과서에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일방적인 주장과 방사능 사고를 통제할 수 있다는 내용을 싣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국회 예결위 소속 박원석(정의당) 의원은 “정부가 제출한 원자력 홍보 예산 약 54억원 중 30억원 가량이 원자력문화재단의 인건비와 운영비로 지출되는 구조”라며 “홍보비보다 조직 유지비가 더 큰 비효율 예산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수십 년 동안 일방적인 홍보에 혈세를 들여왔지만, 국민은 원자력을 ‘행복 에너지’로만 여기지 않는다. 후쿠시마 사고뿐 아니라 잦은 사고, 부품 비리 등 원자력 업계가 자초한 신뢰도 추락의 영향이 크다. 신재생에너지 성장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감안하면 원자력의 중요성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에너지원보다 철저하게 안전을 관리해야 하는 위험한 기술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원자력문화재단은 국민에게 원자력을 가감 없이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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