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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은 왜 "성폭행 당했다"는 소녀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나

입력
2014.11.2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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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성폭행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대법원이 자신보다 27살 어린 여성을 여중생 시절부터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의 사건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소녀는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문자메시지 등을 근거로 “사랑한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14세 이상 미성년자는 성매매가 아닌 경우‘합의’에 의한 성관계가 인정되면 처벌할 수 없다.

대법원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A양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으로 구속기소된 조모(45)씨에게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연예기획사를 운영한 조씨는 2011년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 갔다가 당시 15세던 A양을 만났다. 조씨는 연예인 이야기로 환심을 산 뒤 A양을 불러내 승용차 안에서 키스하려다 A양의 거부로 실패했고, 며칠 뒤 다시 불러내 차 안에서 성관계를 한 것을 시작으로 관계를 계속했다. 이후 A양은 임신 사실을 알고 가출해 조씨의 집에 머물렀고 아이를 낳은 직후 조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조씨는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조씨의 혐의에 대해 1심은 징역 12년, 2심은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원심 재판부는 “A양의 진술이 비교적 일관되고 구체적이어서 신빙성이 높다”며 “15세의 중학생인 A양이 자신의 부모 또래이자 병원에서 우연히 알게 된 조씨를 며칠 만에 이성으로 좋아하여 성관계를 했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고, A양은 조씨의 갑작스러운 강간 시도에 제대로 저항을 하지도 못한 채 강간당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 후에도 A양은 강간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수치스러울 뿐 아니라 난폭한 성격의 조씨로부터 가족들이 해를 당할 것을 염려하여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 채 계속 강간 피해를 당했다”며 “조씨는 임신으로 정상적인 상황판단이 어려웠던 미성년자인 A양을 기망 또는 유혹하여 부모의 보호관계로부터 이탈시킨 후 피고인의 지배하에 옮긴 사실도 인정된다”며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직접증거로는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하며 나머지 증거는 모두 피해자의 진술에 기초한 전문증거 등에 불과하다”며 “A양의 진술은 선뜻 믿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에 의하더라도 이 사건 각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조씨가 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동안 B양이 매일 면회하며 ‘사랑한다,.많이 보고 싶다. 함께 자고 싶다. 함께 살고 싶다. 고맙다. 힘내라’는 내용 등의 접견민원서신ㆍ인터넷서신을 보낸 점, A양이 수백 건의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씨를 ‘오빠, 자기, 남편’으로 호칭하며 연인 사이에나 주고받을 법한 일상생활 이야기와 함께 ‘사랑한다. 보고싶다. 절대 헤어지지 말자’는 등의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점, A양이 성관계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씨를 계속 만난 점 등을 고려했다.

구체적으로 원심은 두 사람이 주고 받은 서신 및 문자메시지와 관련해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내용으로 작성하지 않으면 조씨가 화를 낼 것으로 짐작하고 조씨의 비위에 맞춰 허위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고 진술한 A양의 진술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A양이 조씨를 접견한 횟수나 접견 시의 대화 내용, 서신을 보낸 횟수, 서신의 내용, 색색의 펜을 사용한 것은 물론 하트 표시 등 각종 기호, 스티커를 사용하여 꾸민 형식 등에 비춰 보면, 그 내용은 A양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이고, 이와 달리 ‘마음에 없는 허위의 감정표현을 했다’는 A양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또 “조씨가 자신의 집, 가족관계, 다니는 학교, 학원 등의 정보를 알고 있었으므로, 추행사실이나 강간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거나 고소를 했다가는 조씨가 보복할까 두려웠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엄마가 충격을 받아 쓰러지실까 봐 걱정되기도 해 그렇게 하지 못했고, 이런 것들이 무서워서 조씨를 계속 만났다”며 “ 키스만 해도 임신이 되는 줄 알았기 때문에 임신중절 비용 등이 걱정되어 어쩔 수 없이 조씨를 따라다녔다”는 A양의 진술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A양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조씨가 A양에게 직접적으로 추행사실이나 강간사실을 알리면 보복하겠다는 내용의 협박을 하거나, 폭행하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조씨가 만남을 강요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다른 증거도 전혀 없다”며 “A양 스스로 겁을 먹었다는 이유만으로는 A양이 추행이나 강간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조씨와 계속 만난 사실을 쉽게 설명할 수 없고, 상위권의 학업 성적에다가 성교육을 여러 번 받은 중학교 3학년생이던 A양이 키스만으로 임신이 된다고 믿었다거나 그에 따른 임신중절 비용이 걱정되어 피고인을 계속 만날 수밖에 없었다는 진술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미성년자와 진정한 합의하에 성관계한 경우에 13세 미만에서는 의제강간으로 규정해서 처벌하지만, 14~19세는 위계위력이 있거나, 성관계로 대가가 있어 성매매로 인정되는 경우에만 처벌을 하게 돼 있다”며 “진정한 합의 하에 대가 없는 성관계시 처벌규정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파기환송심에서 동일 범죄로 위계에 의한 성관계나 대가성 성매매 등 다른 법률을 적용(공소장 변경)을 해서 다시 심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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