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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만 쓴다면...'질기심'은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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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만 쓴다면...'질기심'은 나의 힘

입력
2014.11.2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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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심의 대명사 된 살리에리

자신의 초라한 작품 끌어안고

좀 더 낫게 만들려 고군분투 해

자신만의 독창적 가치를 믿고

시기심을 좋은 에너지로 바꾸면서

사람은 더 나아지는 걸지도

살리에리라는 이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해진다. 살리에리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안타까운 예술가다. 평생 모차르트를 시기했으며, 상대에 대한 질투를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파괴했으며, 끝내는 자신의 작품보다 ‘시기심의 대명사’로 후세에 기억되고 있다. 살리에리가 어떤 곡을 작곡했는지는 아무도 관심 없다. “아, 살리에리? 알지, 평생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하다가 결국 2인자로 남은 사람이잖아.” 누군가 나를 그런 식으로 기억한다면 죽은 다음에도 정말 죽을 맛이겠구나 싶다.

살리에리는 황제 요제프 2세에게 모차르트를 소개해준 장본인이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사랑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동시에 그의 재능을 부러워했다. 살리에리가 동료들 앞에서 자신의 최신곡 연주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살리에리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모차르트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모차르트는 방금 들은 살리에리의 모든 연주를 고스란히 재현했다. 곡 전체를 기억함과 동시에 더 경쾌하게 연주했고, 즉흥적으로 덧붙인 뒷부분은 살리에리의 원곡보다 훨씬 나았다. 살리에리의 신곡 발표회는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 전시장이 되어버렸다. 사람들 앞에서 살리에리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아마 많은 예술가들은 살리에리의 심정을 잘 알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신의 작품을 참고 견디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찮아 보이는 자신의 작품을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뭔가 만들어본 사람은 모차르트가 아닌 살리에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난 모차르트가 될 수 없는가 자문했던 적이 많을 것이다. 나도 해봐서 아는데, 자문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질투와 시기심을 견디며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새삼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기심과 질투는 조금 다르다. 시기심은 두 사람의 문제다. 내가 상대방보다 더 잘하지 못한다는 좌절에서 시기심이 비롯된다. 질투는 세 사람 이상의 문제다. ‘나’는 ‘너’를 좋아하는데, ‘너’는 ‘내’가 아닌 ‘그’를 좋아할 때, 질투가 발생한다. 살리에리는 아마도 질투와 시기심 모두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두 단어를 합해서 ‘질기심’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노력해도 모차르트의 재능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시기심을 느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걸 보고 질투를 느꼈을 것이다. 심지어 모차르트는 살리에리가 오랫동안 흠모했던 여학생을 애인으로 삼기까지 했다.

‘시기심’의 저자 롤프 하우블은 사람들이 시기심을 극복(혹은 표현)하는 세 가지 형태로 ‘우울’ ‘야심’ ‘분노’를 들었다. 첫째, 상대방의 능력을 인정하고 자신의 능력 없음을 한탄하며 스스로를 ‘우울’로 몰아치는 사람이 있다. 둘째, 상대방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야심가’들이다. 셋째, 상대방의 성공이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하고, 그를 깎아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분노’로 시기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롤프 하우블의 책을 읽다가 여러 번 뜨끔했다. 나 역시 누군가를 시기했고, 질투했고, 상대방이 좌절에 빠지길 바란 적이 있었다. 상대방의 능력이 부러워 우울했던 적도 있었다. 그 시기심들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었다. 시기심이라는 마음을 상자에 넣은 다음 테이프로 밀봉하고, 끈으로 묶어서 다시 상자에 넣은 다음 테이프로 다시 밀봉하여 마음의 깊숙한 곳에 묻어뒀었다. 그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재능을 시기하는 것은 ‘쿨하지 못한’ 태도인 것 같았고, 겉으로 드러내는 건 무례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시기하는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롤프 하우블의 책을 읽고 나니, 그렇게 시기심을 묻어두는 건 올바른 태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가가 된 지 올해로 15년이 지났다. 책을 여러 권 냈고, 문학상을 받기도 했고, 내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다. 하지만 요즘도 종종 시기심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나보다 나이가 어린 신인 작가들을 보면서 시기심을 느낄 때면 스스로가 참 못마땅하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니, 대체 뭐가 불만인 거야?’ 롤프 하우블은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아니,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시기심의 원인은 나의 불안에 있다. 다른 사람들은 매일 노력해서 뭔가 대단한 걸 만들어내는 거 같은데, 나만 멍청하게 가만히 앉아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다들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자신만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시기심을 좋은 에너지로 바꾸려면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나는 남들과 다르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가치가 있다고 믿어야 한다.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은 나를 보고 시기심을 느낄 수도 있겠지. 그러고 보면 우리는 서로를 시기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래퍼 'MC메타'에게 질투심이란

"해외ㆍ신인 음악 가릴 것 없이

토할 정도로 많이 듣게 만드니

제게도 일종의 창작의 원천이죠"

래퍼 'MC메타'
래퍼 'MC메타'

힙합과 랩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리스펙트(Respect)’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원 뜻은 ‘존경’이지만, 용례로 보자면 ‘그래, 너의 능력은 인정해주겠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기심의 표현 종류로 보자면 두 번째 방식인 ‘야심’인 셈이다. ‘리스펙트’의 정반대에는 ‘디스’(디스리스펙트)가 있다. ‘디스’는 세 번째 종류의 시기심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리스펙트와 디스가 난무하는 힙합은 모든 예술을 통틀어 가장 솔직한 장르가 아닌가 싶다(내 생각에). 힙합만큼 사람의 마음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예술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시기심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만 힙합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때로는 거친 욕을 내뱉고, 또 어떤 때는 상대방의 약점을 집중 공격하고, 어떤 때는 자신을 비하하면서 음악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솔직히 드러낼 때 좋은 음악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자신은 이런 표현을 쑥스러워하지만).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의 대부이자 최고의 래퍼 ‘MC메타’를 만나서 힙합과 랩에 담기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물어보았다.

“시기심엔 세 종류가 있대요. (앞서 적었던 세 종류의 시기심에 대해 길게 얘기하고 나서) 저는 깊이 공감했는데요. MC메타씨는….”

“똑같네요. 하아, 다 똑같네요. 지금 얘기하시는데 세 종류의 래퍼들이 딱 떠올랐어요. 다 제 주위에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엔 아예 질투를 표면으로 끌어올려요. ‘질투는 나의 힘’이란 표현을 쓴 적도 있지만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정말 질투가 저를 더 낫게 만듭니다. 지금은 그러지 못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정말 토할 정도로 음악을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던 ‘우탱클랜’의 ‘메소드 맨’의 노래 한 곡을 일주일 동안 반복해서 듣기도 하고, 잠들기 전까지 귀에서 이어폰을 뺀 적이 없어요. 그게 다 질투 때문이었죠. 요즘도 질투를 자주 느껴요. 제 창작의 비밀이 뭔지 생각해봤는데요, 아마도 질투 때문에 여전히 많은 음악을 듣는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신인들의 음악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시기심은 양날의 검 같아요. 시기심으로 우울해지면 칼집에 칼을 넣다 자신이 찔리게 되고요, 야심으로 가득 차면 칼을 갈게 되고요, 분노가 극에 달하면 등 뒤에서 상대를 찌르게 되죠(인터뷰 때는 이렇게 멋지게 말을 못했는데, 정리해놓고 보니 지나치게 멋진 말처럼 들린다는 문제가 있지만, 대략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했더니).”

“예전에 함께 살던 디제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커다란 잔에다 커피 믹스 다섯 개 넣어서 마시면서 담배 물어요. 그러곤 곧바로 미국이나 일본에서 사온 비디오를 틉니다. 유명한 디제이 크루들이 만든 홈비디오인데 그걸 보면서 혼자 배틀을 하는 겁니다. ‘그래, 너는 스크래치 10번 했냐? 오케이, 나는 11번 해주지. 에이씨, 내가 이길 거야’ 이러면서 계속 그거만 해요. 저는 그게 참 좋아 보이더라고요.”

이렇게 적고 보니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혹시 마음 속에 시기심 없어요?’라고 물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나도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 그러지는 않았다. 시기심에 대한 이야기보다 중요한 이야기가 많았으므로, 시기심에 대한 이야기를 일단락하려고 한다(아마 앞으로도 시기심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하게 될 것이다).

MC메타의 랩을 무척 좋아한다. 그는 경상도 말투로 랩을 한다. 애써 감추지 않는다. 그의 다른 음악들도 무척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무까끼하이’라는 곡은 명곡 중의 명곡이라 생각한다. 경상도 사투리로 된 가사를 읽고 있으면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노래를 듣는 내내 점점 피가 끓어오르고, 어느새 몸을 흔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랩은 때로 음악이었다가 때로는 시였다가 한 순간 반짝이는 칼이었다가 체념이 되기도 하고 혼잣말인 것 같다가도 강력한 펀치로 변한다. ‘무까끼하이’를 듣고 있으면 그 모든 마음의 변이를 함께 경험하는 것 같다.

‘무까끼하이’는 MC메타의 음악 경력 중에서도 중요한 기점이 됐다. ‘무까끼하이’는 단 한 번 만에, 순식간에 스튜디오에서 가사를 써 내려간 곡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아주 짧은 시간에 썼고, 순식간에 모든 마음이 고향 대구로 돌아갈 수 있었던” 특이한 체험의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스튜디오에서 직접 가사를 쓰는 방식으로 작업을 바꾸기로 했다. 그의 작업 방식과 누군가에게 랩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 소설가

● MC메타의 '무까끼하이'는 어떤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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