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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저장했다 필요할 때 쓴다" 전력대란에도 든든한 ESS

입력
2014.11.2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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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에 전기 저장해 뒀다가

일정한 주파수로 전력 내보내

송배전 불안정성 극복

전기료 싼 밤에 저장, 낮에 사용

최대 25% 비용 절감 효과 거둬

2011년 가을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일어나 수십만 가정과 관공서, 금융기관 등이 큰 불편과 피해를 겪어야 했다. 당시 한 은행의 전국 지점 중 90%가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를 확보하지 않아 적지 않은 손실을 입은 반면, 경기 의정부시의 한 빌딩은 10㎾(킬로와트) 용량의 UPS를 설치한 덕분에 직원들은 정전이 된 줄도 모르고 업무를 볼 수 있었다.

UPS는 최근 에너지 시장의 ‘팔방미인’으로 떠오르고 있는 대용량에너지저장장치(ESS)의 일종으로 일정 용량의 배터리가 내장돼 전력 공급이 차단되더라도 한동안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장치이다.

ESS란 리튬이온전지나 납축전지 등을 통해 고압의 교류 전기를 저압의 직류 전기로 바꾼 뒤 이를 배터리에 저장해 뒀다가 필요할 때 이를 다시 교류로 바꿔 쓸 수 있게 하는 장치다.

ESS는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에너지운용시스템(EMS)은 ESS에 전기가 얼마나 저장되고 있는 지와 남아 있는 양이 얼마인지 확인하는 모니터링 운용 시스템이다. 그리고 송전시의 전기는 교류전기를 직류전기로 바꿔서 배터리에 저장할 수 있게 하고, 배터리의 저장된 직류전기를 교류전기로 바꿔서 밖으로 내보는 역할을 하는 파워컨디셔닝시스템(PCS)이 있다. 그리고 컨테이너 모양의 그리드배터리시스템(GBS)이 있다. GBS 안에는 대용량배터리인 셀(Cell)과 배터리들을 모아놓은 모듈이 있고, 여러 모듈을 연결시켜 각각의 셀들이 하나의 배터리처럼 움직이게 하는 배터리운용시스템(BMS)이 있다. 이 BMS는 과충전 등을 방지하는 안전장치가 들어있다. 마지막으로 모듈과 PCS 사이의 통신과 정보 교환을 담당하는 접합박스가 있다.

ESS는 갈수록 중요해지는 에너지 시장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며 ‘든든한 저장고’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전력의 수요와 공급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초과 생산 돼 그냥 버려지는 전기를 줄여 아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하루 중 전략사용량은 매일 오후 2~4시에 가장 많고 늦은 밤에 가장 적다. 그런데 전력을 보내고 받는 송배전망은 전력을 가장 많이 쓰는 시간대의 용량을 기준으로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낭비가 심하고 전기료 중 기본 요금도 올라가게 된다.

김순호 삼성SDI 부장은 “ESS를 활용하면 전력 사용량을 줄일 수 있어 전기 요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본 요금을 낮출 수 있는 효과가 있다”며 “특히 전기요금이 싼 밤에 전기를 사서 저장했다가 전기 값이 비싼 낮 시간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12년 10월 제주 스마트그리드 시범단지 내 105가구 중 25가구가 ESS 설치 이후 전달보다 전기료를 덜 냈고, 많게는 25%까지 전기료 절감 효과를 거뒀다.

전문가들은 ESS가 국가적으로 볼 때는 전력대란의 해결사 역할도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전력 생산량은 약 80GWh(기가와트아워)이며 이 중 5%인 4GWh는 비상 때 사용 목적 예비전력으로 편성돼 전력공급량에서 빠진다. 전력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지난해 여름의 전력 부족량이 약 2GWh였던 점을 감안하면 예비 전력의 반이라도 쓸 수 있었다면 전력대란의 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한전 측 설명.

한전 관계자는 “전력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얘기되지만 ESS만 있으면 원전을 굳이 지을 필요가 없다”며 “1GWh 용량의 원전 1기를 추가로 짓는데 약 3조원이 드는 반면 현재 같은 용량의 ESS를 설치하는데는 절반도 안 되는 약 1조2,500억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경제성뿐만 아니라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폭발 사태 이후 원전의 안전성이 부각된 점까지 감안하면 앞으로 지능형전력망(스마트그리드)을 구현하는데 ESS가 제격이라는 얘기가 힘을 얻고 있다.

게다가 전기의 품질을 좋게 하려면 송변전 과정에서 주파수가 출렁일 때 전력을 추가로 투입해 이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 줘야 하는데 이 역할을 ESS가 맡게 되면 연간 3,200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한국전력 관계자는 설명한다.

태양광, 풍력 등 미래 에너지의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는 신재생에너지는 기후 변화에 따라 전력의 품질이 일정하지 않고, 공급도 불안정하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는데 ESS를 통해 이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

이런 이유들 덕분에 ESS는 미래 에너지 시장의 블루오션으로 꼽히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네비건트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ESS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16조원에서 2020년 58조원 규모로 연 평균 53%의 폭발적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관련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2012년 3월부터 ESS설치 때 보조금을 주고 있고, 파나소닉, NEC 등 주요 전자 기업들은 관련 제품을 쏟아내면서 한국 기업들에게 가전, 반도체, 소형전지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긴 이후 ESS를 통해 반전을 꾀하고 있다. 특히 원전 사태를 계기로 ESS의 핵심인 이차전지 사업을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세계 최초로 ESS 설치 의무화 법안을 만들어 올해부터 공급 전력량의 2.5%, 2020년까지는 5%만큼 ESS를 설치하도록 했다. 유럽은 ‘솔-이온(Sol-ion)’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2020년까지 유럽 내 태양광 발전 시설의 12%에 ESS를 의무적으로 설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리 정부도 ‘에너지저장 기술 개발 및 산업화 전략(K-ESS 2020)’를 수립하고, 2020년까지 6조4,000억원 규모의 기술 개발 및 설비 투자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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