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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동물원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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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동물원 단상

입력
2014.11.2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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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동물원 안내판이 조금 더 친절해지기를 바란다. 사자 독수리 북극곰…, 어디나 똑 같은 종명, 학명, 번식 등 습성, 평균치의 수명과 몸무게만이 아니라 지금 앞에 있는 곰 나이와 몸무게, 가능하다면 이력 같은 것들을 알려주는 글도 보고 싶다는 거다. 사육사가 부르는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도 알고 싶고, 개성이나 식성도 궁금하다. 일주일마다, 아니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에피소드나 자잘한 근황을 소개해주면 새 소식이 궁금해서라도 동물원을 더 자주 찾아갈 테고, 또 더 오래 머물게 될 것 같다.

물론 그런다고 동물들이 반길 리는 없다. 오히려 더 성가셔할 공산이 큰 게, 관람객이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일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원 직원들로서도 인상 찡그릴 만한 얘길 테다. 가욋일이 생기는 거니 말이다. 수당이라도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모르긴 해도 그 역시 여의치 않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아끼는 동물들이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좀 더 받고 그런 저런 계기로 동물원을 찾는 시민들이 많아지면 예산을 따내는 데 좀 수월해질 수는 있겠다. 그래서 나중에라도 직원들에게 온당한 노동의 보상이 주어지고, 동물들의 처우도 지금보다는 나아지기를 바란다. 초식동물 먹이 자판기처럼 ‘코인’ 같은 걸 판다면,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을 만날 때 얼마씩이라도 기부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 서울 어린이대공원은 입장료가 없다.

이런 ‘한가한’ 생각을 나름 진지하게 해본 것은, 그 곳 북극곰이 늙어 죽은 달포 전부터다. 사는 곳이 가까워 꽤 자주 눈을 맞춰온 터라 한동안 이웃을 잃은 것처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죽은 뒤에야 곰의 이름이 ‘얼음이’이고 스무 살이었단 걸, 우연히 알게 됐다.

지금껏 내가 가본 동물원은 대략 열 곳쯤 된다. 그런데 그 각각의 분위기나 풍경, 동행한 이들은 웬만큼 기억나는데, 떠오르는 동물은 거의 없다. 그 곰이 이 곰 같고 그 곰이 저 곰 같아서다.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달랐을 모호한 몸짓을 보면서 그냥 ‘곰이니까’ 했을 테고, 고유하지만 낯선 동작에도 ‘곰이 왜 저래?’ 했을지 모른다. 아마도 개체를 종으로, 추상화한 전체로 봐온 탓이다. 그게 내 탓만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애매한 감각 자극을 자신의 경험이나 신념에 일치시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미지든 텍스트든 모호한 것들을 자신의 욕구에 부합되게 해석하고, 부분을 통해 전체를 그려내기도 한다. 게슈탈트 심리학이나 시지각이론은 기업ㆍ상품 마케팅, 선거 캠페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용적으로 활용되고 있고, 추상화ㆍ일반화는 철학과 과학적 추론의 주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체가 부분의 합과 같을 수 없고, 개체가 집단의 모든 특성을 구현할 수도 없다. 그리고 내가 아는 완결적 전체란, 만일 그런 게 있다면, 언제나 부분들로 얼기설기 꿰어놓은 가상의 전체일 것이다.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대충 살자는 게 아니라 대충 아는 것들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을 포기하지 말자는 얘기다. 과학이 과학이려면 오류의 가능성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영화 ‘인터스텔라’의 소녀에게서도 들은 것 같다. 과학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습관적으로 보고 듣고 말하고 또 머릿속에 전제해온 게으른 집합명사들이 어떤 맥락에서는 폭력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이제 어린 물개들이 세를 든 어린이대공원 바다동물관 수조 앞에서 했다.

또 어쩌면 이게 ‘한가한’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했던 말, “인간의 선은 아무런 힘이 없는 자들을 대할 때 순수와 자유로움 그 자체로 나타난다. 가장 극단적이고 너무나 심오하여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진정한 인간성의 도덕적 시험은 힘없는 동물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는 말이 나는 늘 버겁고 두렵다.

최윤필 선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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