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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엽 "통산타율 1할… 그 실패가 나를 만들었다"

입력
2014.11.2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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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염경엽 감독.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넥센 염경엽 감독.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승부사의 눈물은 뜨거웠다. 우승을 놓친 아쉬움, 지금까지 달려왔던 목표를 잃은 허무함 때문이었을까. 염경엽(46) 넥센 감독은 인터뷰 내내 자신의 ‘능력 부족’을 자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염 감독은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창단 첫 우승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승부수를 던졌다. 투수진의 약점을 상쇄하고자 선발 투수를 4명이 아닌 3명으로 돌리고, 필승조 3명도 전 경기 출격을 준비시켰다. 하지만 투수진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과부하가 걸렸고, 타선도 침묵을 지켜, 넥센은 삼성에 2승4패로 무릎꿇었다. 6차전에서 승부가 끝나자 염 감독은 더그아웃을 빠져나가 눈물을 쏟았다.

염 감독을 지난 17일 서울 목동구장 감독실에서 만났다. 야구계에서는 염감독이 선수로서 빛을 보지 못했지만 밑바닥부터 숱한 실패와 시행 착오를 딛고 사령탑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염 감독은 “현역 시절 프로에 입문하기 전까지 실패를 몰랐다. 그러나 정작 프로에서는 실패했다. 야구를 너무 쉽게 본 탓이다”며 “지금까지 해왔던 야구인데 제2의 인생도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언젠가 지도자가 되면 좋은 지식들을 전수해주고 싶어 늘 메모하고 연구했다. 어쩌면 타율 1할의 실패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현역시절 프로 통산 타율이 1할대다. 타격이 바닥인 선수가 지도자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타율 1할의 실패가 그래도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발판이 됐다. 프로(1991년 태평양)에 올 때까지 후보 생활 한 번 안 해봤을 정도로 순탄한 과정을 거쳤다. 고교(광주제일고)때 청소년 대표팀을 했고, 대학 진학 때 연세대와 고려대 양 쪽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그 때만하더라도 야구 선수의 최고 목표는 연세대, 고려대 입학이었다. 프로에 와서도 신인 신분으로 주전 자리까지 꿰차면서 스스로 만족 했다. 더욱 성장을 하려고 노력해야 했는데 자만에 빠져 1할을 치게 됐고, 1996년 현대로 넘어가면서 박진만에게 주전 자리를 빼았겼다. 김재박 감독님을 많이 원망도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노력을 안 한 내 잘못이었다. 1997년부터 ‘제2의 인생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어 메모를 시작했다. 은퇴 이후 코치나 프런트를 하더라도 좋은 지식들을 전수해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 감독님들, 다른 팀 코치님들이 모두 스승이다. 스승들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연구해, 나만의 방식대로 바꿔 자료를 만들었다.”

-야구인으로서 라이벌을 꼽는다면.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아버지가 야구에 대한 열정이 매우 컸다. 특히 이종범과 많이 비교했다. 노력도 많이 하고,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종범이나, (김)기태와 같이 커왔던 영향이다. 아버지가 지적하는 부분은 늘 노력이었다. 나는 시키면 더 안 하는 성격이었다. 부모님 말씀이 잔소리로만 들렸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부모님 얘기가 다 맞았다. ‘왜 열심히 해야 되는지’를 알려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좀 더 나은 성적으로 프로무대에 ‘흔적’을 내고 은퇴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프런트 직원, 작전주루코치에서 넥센 감독으로 발탁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건 모르겠다(웃음). 이장석 대표님이 결정을 한 거니까. 한 마디 물어봤다. ‘저를 왜 선택하셨습니까’라고 하니 ‘내 감(感)과 베팅’이라고 말씀하셨다.”

-넥센 감독 면접 볼 때 제시한 비전은.

“제가 생각하는 야구, 넥센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얘기했다. 저랑 인터뷰하는 것 자체도 ‘나랑 왜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 응시 원서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나.

“원서를 낸 적은 없다. 대표님이 제의를 했고, 인터뷰는 한번 했다. ‘당신한테 베팅을 건다’라고 했다. 단번에 감독 결정을 해줬는데 당황스러웠다. 김시진 전임 감독님을 찾아가 감독 제의를 받은 사실을 얘기했고, 김 감독님이 ‘무조건 해라, 네가 하는 게 가장 넥센한테 좋을 것 같고, 잘할 것 같다’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줬다. 그래서 자신감을 얻었다.”

-이장석 대표와는 주로 무엇을 의논하나.

“거의 감독실에 안 오신다. 한 달에 한번씩 티 타임을 하자고 해도 ‘잘하고 있으니까 감독님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씀하신다. 가끔 본인 의견이 있으면 구단 직원을 통해서 얘기하고 나는 답변을 드린다. 대표님한테 좋은 아이디어를 받을 때도 있었고 채택해본 적도 있다. 채택된 건 말해줄 수 없다. 트레이드나 이런 것들은 구단의 재산이니까, 선수에 관련된 부분들은 구단이 다하고 현장에 관련된 거는 제가 다 담당한다. 트레이드 할 때도 의견을 물어보신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다 잡은 3차전과 5차전을 놓치고, 결국 2승4패로 졌다.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은데.

“아쉬운 경기는 3차전과 5차전이다. 1승만 더 했어도 마지막 7차전까지 가서 재미있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든 경기를 하면서 선수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코칭스태프와 나의 잘못이다. 선수들을 누가 가르치나. 내가 가르치는 것이고, 가르침에 있어서 뭔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실수가 나오는 것이다. 이번 시리즈는 기본에서 졌다고 생각한다. 수비에서의 기본, 투수에서의 기본, 그 다음에 타격에서의 기본이 우리가 삼성에 밀렸다고 보기 때문에 우승을 못했다고 생각한다. 기본이라는 것은 쉬우면서 어려운 것이다. 야구에서 기본은 좋은 습관이다. (5차전 수비 실책을 한)강정호가 공을 보고 잡아야 되는데 마음이 급하니까 공을 안보고 서두른 것이다. 2년 동안 얘기했지만 그것이 제대로 실천이 안 됐기 때문에 실수들이 나왔다. 내년 우리 팀의 키워드는 ‘기본기’와 ‘실천’이다. 요 며칠 동안 생각한 것이다. 기본기라는 건 정말 중요한 것이라 더 강조할 것이다. 코치들이 더 잔소리를 해도 우리 팀이 가는 방향이니까 더 새겨듣고, 흘려 듣지 말라고 할 것이다.”

-시리즈 종료 후 선수들에게 어떤 말을 해줬는지.

“‘정말 열심히 해줬고,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시리즈까지 갈 수 있었다. 우리한테 많은 경험이 됐고, 준우승이라는 아픔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게 진실이니까. 조직을 운영하면서 100% 다 만족시킬 순 없다. 30% 정도는 나에 대한 불만도 있을 테고, 그 불만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큰 틀에서 움직이니까 손해 보는 사람도 분명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시리즈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보인 눈물의 의미는.

“손에 거의 다 잡았던 우승을 놓쳐 아쉬움이 컸다. 정말 우리 팀이 강팀으로 가느냐는 기로에 섰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이기면 강팀이고, 지면 강팀이 아닌 건데 그 고비를 넘어서면 내년이 더 편할 수 있다고 봤다. 한번 (우승을) 해봐야지 다음에 기회 왔을 때 더 쉬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놓친 것에 대한 섭섭함, 지금까지 해온 목표를 잃었다는 허무함, 당연한 것이지만 모든 것을 정말 쏟아 부으면서 한 시즌인데 결실을 못 맺은 것에 대한 억울함도 있다. 이것이 류중일 삼성 감독님과 나의 차이다. 감독의 능력 차이라고 생각한다.”

-내년 시즌에는 간판 유격수 강정호의 공백을 메워야 하는데 복안이 있다면.

“강정호가 빠지면 빈 자리가 15승 정도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능력으로 2, 3승을 메우고, 코치의 능력으로 2, 3승 그리고 주루 및 투수부문에서도 보완하면 좋은 시즌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시리즈에 실패한 것도 투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투수 부분은 제가 2년 동안 성과를 못 낸 점이라서 책임져야 하고 내년에는 부족한 것을 좀 더 채우도록 할 것이다. 야수는 어느 정도 만들어진 단계인 만큼 투수만 만들어지면 페넌트레이스 1위를 할 수 있는 전력이 나올 것 같다.”

-사표를 늘 품고 다녔다고 했는데 실제 제출한 적도 있나.

“사표를 낸 적은 없다. 능력이 없으면 책임을 지는 거니까 경질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제가 인정받지 못하면 조직에서 나오는 것이 마땅하다.”

-야구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스트레스가 쌓이면 수국사(서울 은평구 소재) 주지스님인 호산 스님을 찾아간다. 나를 다스려야 다른 사람도 다스릴 수 있는 거니까. 절에서 인내와 기다림을 배운다. 또 절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답변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심리적으로 편해진다. 포스트시즌 때는 쉴 때마다 갔다. 차를 즐겨 마시는 것은 니코틴이 좀 걸러지라는 이유에서다. 또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되면 카페인 섭취량이 늘어나니, 대신 차를 마신다.”

-염갈량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본인은 어떤가.

“(팬들이) 좋게 봐주셔서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아직 완성체가 아니다. 한참 배워야 될 때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별명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조갈량’(조범현 KT 감독) 원조가 계신다. 우승 감독님이니까 그분과 똑같은 별명을 갖고 있는 것만해도 감사하고, 친한 감독님 중에 한 명이다. 응원도 많이 해주셨다.”

-염 감독의 스타일에 팬들의 관심이 많다. 쇼핑할 때 취향이 궁금하다.

“취향은 약간 세미 정장 스타일. 유행 안타고 딱 깔끔한 알마니 스타일? 대학 때부터 술을 안 먹어서 술 대신 스트레스 푸는 게 쇼핑이었다. 사는 것도 좋아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사서 놔뒀다가 지인들에게 선물한다. 싸면 많이 산다. 눈으로 다 보고 산다. 해외 직구는 안하고 미국 전지훈련을 가면 아웃렛 가서 산다. 쉬는 날 애리조나 서프라이즈에서 팜스프링까지 코치들을 데리고 차로 5시간 운전해 한꺼번에 다 사온다.”

-패션을 위해 몸매는 관리하는 것인가, 예민해서 살이 빠지는 것인가.

“살은 원래 잘 안 찌는 체질이다. 비 시즌 때 체력을 보충해야 한다. 곰의 인생과 같다. 겨울에 살을 찌워야 한다. 야구가 끝나면 밥맛이 돌아온다. 야구에 집중하면 밥 먹는 시간도 아깝고, 밥맛도 없다. 뭔가 했을 때 끝을 못 보면 해결이 돼야 다음 일을 할 수 있는 성격이다. LG 운영팀장을 할 때 외국인선수 스카우트를 하다 사흘도 굶어 봤다. 현역 시절에는 70㎏, 지금은 64㎏ 정도 나간다. 키는 177㎝다. 나도 내가 마른 게 싫다. 그래서 한약, 종합 비타민 등 약을 많이 먹는다. 종합 검진을 받으면 위궤양 말고는 큰 이상이 없다.”

-LG 프런트 시절 ‘정치꾼’(구본준 구단주와 친하다는 소문)으로 몰려서 딸이 실망했다고 하는데, 요즘 딸은 감독으로서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나.

“딸이 야구에 관심이 없다가 지금은 관심을 갖는다. LG때는 많은 오해를 받았다. LG가 성적이 안 좋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시점이었다. 오해를 받고 있었던 터라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표를 내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두 달 동안 사표 수리를 안 해줘서 기다렸다. ‘해외에 1년간 나가 있어라’는 말도 들었다. 결국 그런 오해를 푸는 것은 사표 던지고 나오는 것만이 답이었다. 당시에는 ‘내가 인생을 너무 열심히 살았나 보다. 그래서 이런 오해를 받고 있나’라고 생각했다. 내려놓고 싶었다. 1~2년 쉴 생각도 했다. 준비했던 자료를 가지고 책 한 권을 내고, 충전 시간도 가지려 했는데 내려놓으니까 러브콜이 왔다. 두산에서 적극적으로 왔다. 하지만 김시진 감독님을 버릴 순 없어서 넥센으로 왔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장석 대표님이 좋은 선수를 모아줬고, 김시진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줬다. (팀 완성도)3분의2 지점에서 제가 퍼즐을 맞추고 있고,나아가 완성한 다음 후임 감독한테 인수인계 하는 것이 원하는 방향이다. 김시진 감독님이 초석을 안 다져줬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구단 운영 시스템이 좋다고 생각하면 내 밑에서 감독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과정 없이 이뤄질 수는 없다.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 정착되면 그 팀의 컬러가 되고, 전통이 된다. 김시진 감독님에 이어 제가 전통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이제 팀은 7년 차다. 전통이 시작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김지섭기자 onion@hk.co.kr

이현주기자 memory@hk.co.kr

사진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 어렵게 찾은 염경엽 감독 선수시절 영상

(1996년 플레이오프 2차전. 2분 22초 지점서 등장)

●염경엽은 누구

광주제일고, 고려대를 거쳐 1991년 태평양에 입단했지만 선수로서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2001년 은퇴했다. 태평양과 넥센의 전신 현대 유니콘스에서 내야수로 뛰었다. 은퇴후에는 프런트로 전향했다. 현대 유니콘스와 LG트윈스 운영팀에서 스카우트를 담당했다. ‘대어’를 낚는 안목이 있다는 평을 들었으나 LG트윈스 선수단 사이에서 파벌을 형성했다는 소문에 휩싸여 스스로 팀을 떠났다. 염경엽을 지도자의 길로 이끈 것은 김시진 전 현대ㆍ넥센 감독이다. 김 감독의 영입으로 2007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2011년 넥센의 작전ㆍ주루코치를 맡았다. 2012년 김시진의 후임으로 제3대 넥센 감독 자리에 올랐다. 염경엽의 넥센은 2008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2013년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고, 2014년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염경엽 역시 선수가 아닌 넥센 감독으로 야구 전성기를 맞이했다. 넥센팬들 사이에서는 전술 싸움과 지략 대결에 뛰어나다고 해서 삼국지 제갈량에 비유한 ‘염갈량’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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