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3기도 극복, 희망 빚는 예술..."도자기 만들 동안 근심 잊은 덕분"
예인들의 꿈 인사동 갤러리 진출 목표
20일 서울 성북구 예술창작터에는 조금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성북 지역 중ㆍ장년 주부 25명으로 이뤄진 ‘성북 도예 나래 빚다’팀이 지난 17일부터 작품 전시회를 연 것이다. 1층에는 특정 주제를 표현한 ‘6인전’ 작품 50여 점을, 2층에는 생활 도예품 100여 점을 전시했다.
범띠인 민영숙(64) 회장은 민화 속 호랑이를, 건축가 출신인 박이승(50)씨는 건물 형상을 본 뜬 도예품을 내놨다. 또 ‘벽걸이형 도자 조명’이라는 독특한 아이디어도 최초로 시도했다. 나래빚다 팀은 특히 기계 물레가 아닌, 직접 손으로 반죽을 반든 뒤 돌려 빚는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다. 지도교사 박경란씨는 “기계를 사용하는 것 보단 작품이 다소 투박하지만 은은한 멋을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9년 서울도시과학기술고(옛 북공고) 미술 교사 출신의 박경란 씨가 성북 주민들을 대상으로 도자기 빚기 회원을 모집한 것이 출발점이 됐다. 여기에 도시과학기술고가 빚기, 초ㆍ재벌 구이, 유약 작업 등의 시설을 모두 갖춘 도자 공간을 제공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1주일에 두 차례 10시간씩 도자기를 굽는데, 고급반 격인 나래빚다 외에 중ㆍ초급반을 거쳐간 회원들이 100여명을 훌쩍 넘는다.
특히 도자활동을 통해 정신적ㆍ육체적 건강을 되찾은 회원이 많다. 민영숙 회장은 2009년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지만 최근 완치 판정을 받으면서 ‘희망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김경남(49)씨도 2002년부터 뼈 마디가 굳는 류마치스를 앓고 있는데 꾸준한 도예 활동을 통해 일반인과 똑같이 일상 생활을 한다. 민 회장은 “꾸준히 흙을 만지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해서 무작정 시작했는데 도자기를 만드는 동안 근심과 걱정, 병을 잊고 집중했던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한때 노인 우울증으로 바깥 외출을 거부했던 ‘왕 언니’ 김정환, 90대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던 윤금주, 두 수험생을 둔 학부모 노애화씨도 모두 나래빚다를 통해 각종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극복했다.
“도자기를 얼마나 빚겠어?”라며 반신반의 했던 가족들도 이제는 든든한 응원군이 됐다. 감영희씨는 최근 레지던트 의사 아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면서 모자간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 중등교사 출신의 이명자 부회장은 은퇴 후 꾸준한 도자 경험을 쌓아 지난 8월부터는 인근 중학교 자율학기 수업 강사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회원간 우애가 유독 돈독하다. 막내 유정희(45)씨와 최고령 김정화(74)씨는 나이차가 서른 살에 가깝지만, 모임 내에서의 호칭은 모두 ‘언니’ ‘동생’으로 통한다. 박경란 씨는 “도자를 빚는 시간 만큼은 마음을 열고 인생 선배들에게 가족ㆍ자녀 상담도 하는 등 자연스레 지역 공동체가 형성된다”고 했다.
2012년 위기도 있었다. 도시과학기술고에서 지원하던 시설 지원이 중단될 뻔 했던 것. 하지만 회원들의 적극적인 탄원 활동으로 나래빚다는 존속될 수 있었다.
내년 말에는 예술인들의 꿈인 인사동 갤러리에 진출해 작품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벌써 부터 작품 구상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다. 또 체계적인 온오프라인 판매망 구축도 계획 중이다. 무엇보다 초중고교 및 대안학교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재능 기부 활동으로 맡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민영숙 회장은 “도자활동을 통해 팀 안에서의 희망을 넘어 지역민들의 희망을 빚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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