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서 화학물질 나와 생태계 파괴" 국제적 공감대 형성돼 대부분 인양
해상 크레인 용량 등 기술적 한계… 비용도 적게 드는 '절단 후' 선호
#. 2012년 1월 승객 4,000명을 태우고 이탈리아 서쪽 토스카나 해안을 지나던 초대형 여객선 ‘코스트 콩코르디아’호(11만4,147톤)는 암초와의 충돌로 순식간에 좌초되며, 3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옆으로 쓰러진 이 거대 선박의 인양 방법을 놓고 당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당국은 해양오염 등을 고려해 배를 절단하지 않기로 했다. 이후 선체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해저면에 플랫폼을 설치하고 철제 물탱크를 배에 부착한 뒤 인양하는데 까지 무려 20개월이 걸렸고, 비용은 총 8,675억원이 투입됐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에도 불구하고 성과도 있었다. 이달 초 선체 해체 과정에서 마지막 실종자였던 인도인 웨이터 러셀 레벌씨가 발견됐다.
#. 1994년 발트해 연안에서 침몰한 ‘MS 에스토니아’호. 989명의 승선자 중 생존자는 137명에 불과했다. 실종자 대부분이 선내에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되면서 인양 요구가 들끓었다. 하지만 84m에 이르는 깊은 수심과 섭씨 10도 수준의 수온이 장벽이었다. 결국 정부는 철학자, 법학자 등 가계 원로급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윤리위원회를 구성해 해법을 모색했다. 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인양 도중 시신 훼손 등으로 온전히 수습하지 못할 바에는 그대로 두는 게 옳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위원회 논의 결과를 그대로 수용했고, 결국 인양을 포기했다.
정부가 세월호 인양 논의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오는 24일 공식 출범하기로 하면서 실제 인양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해외 각국의 사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50년 이상의 인양 역사를 가진 나라들이 선박 인양 논의를 어떻게 전개했고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살펴봄으로써, 합리적인 결론 도출하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주요 해외 침몰선박 인양사례 15건 가운데, 인양을 한 사례가 14건에 달했다. 절단 후 인양, 에어백, 바지선 등 방법은 다르지만, 인양을 우선으로 추진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각국이 인양을 기본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과거와 달리 해양오염 및 사고 예방을 위한 국제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선체를 그냥 둘 경우, 기름과 각종 화학물질이 유출돼 인근어장 및 생태계를 파괴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침몰 후 배가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고, 배를 인양할 해상크레인의 용량이 한정돼 있는 점 등 때문에 선주들은 수습 비용이 덜 드는 ‘절단 후 인양’을 선호하는 추세다. 실제 2002년 침몰한 ‘트리칼라’호(1만6,000톤)나, 2011년 가라앉은 ‘B-오셔니아’호(1만672톤)등이 이 과정을 거쳤다. 물론 3,000톤급 이하 중소형 선박은 대부분 크레인을 통해 끌어올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양 후 재사용 등 목적이 있다면 보존 인양을 하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해역의 수온 유속 등 작업의 난도와 그로인한 비용부담 때문에 절단을 택하는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양의 후유증도 상당하다. 2009년 11월 일본 미에현 앞바다에서 침몰한 7,910톤 규모의 여객선 ‘아리아케’호의 인양 논의는 처음엔 순조로운 듯 했다. 29명의 탑승자 전원이 구조된 데다, 선주 역시 선체를 4등분으로 절단한 뒤 들어올리는 방식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듬해 3월 현지 해역의 강한 파도로 선체 앞부분이 부러지며 바다에 빠졌고, 이 과정에서 화물과 기름이 유출되면서 인근 어장에 피해를 입혔다. 결국 가라앉은 부분을 50~100톤짜리 덩어리로 자르는 추가 작업을 거치는 등 난항 끝에 결국 2010년 12월 최종 인양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더구나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처럼 10만톤급이 넘는 초대형 선박은 절단 역시 쉽지 않다. 또 컨테이너선이나 유조선에 비해 내부에 구조물이 많은 여객선이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양을 포기한 사례도 적지 않다. ‘MS 에스토니아’호 사고 외에도 지난 2006년 이집트 연안 홍해에서 화재로 가라앉은 ‘MS 알-살람 보카치오98’호가 대표적이다. 당시 침몰로 1,031명의 사망자를 낸 큰 사고였지만, 이집트 당국은 선체가 수심 800m 아래 가라앉아 인양이 불가능하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이 밖에도 1953년 영국의 ‘MV 프린세스 빅토리아’호는 깊은 수심(96m)과 빠른 유속으로 인양을 포기했다. 특히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침몰한 ‘USS 애리조나’호는 환경오염 등의 이유로 인양을 포기했는데, 당시 당국은 절단으로 인한 해양오염이 더 크다는 판단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해외 사례들이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을 잘 분석해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길영 한국해양대 교수는 “세월호의 경우, 현재 선체나 인근 해역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져야 적합한 인양방법이 나오겠지만, 기존의 해외 사례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며 “이를 통해 불필요한 갈등과 사회적인 낭비를 막고 더 나은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한형직기자 hj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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