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단 하루, 한 회 공연이었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보기 위해 예술의전당 뒤편 언덕에 있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이 공연은 국립현대무용단이 주최하고 김해주 큐레이터가 기획한 공간사랑 아카이브 전시 ‘결정적 순간들’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즉 전시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하고 우여곡절 끝에 얼마 전 미술관으로 바뀐 공간 사옥(원서동)에 있던 ‘공간사랑 소극장’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제안된 것이다. 1970~80년대 실험예술의 산실이었고 무용인들이 현대무용의 정신이 발현된 곳으로 추억하는 ‘그 장소’에 대해 기획자는 기록과 증언으로 구성된 아카이브와 함께 기록들을 또다시 창작으로 되돌리는 ‘리빙 아카이브’를 구성하려고 했다.
이런 배경을 포함해 나는 공연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흥미로웠다. 미술과 연극의 사이 어디쯤에서 퍼포먼스, 다원예술 등 특정 장르의 언어로 포섭되는 것을 꺼려하는 그의 작업은 학생시절부터 참조의 목록에 있었다.
2005년 인사동에 새로 지어진 나선형 구조의 건물 전체를 사용한 홍성민 연출의 ‘총체극-앨리스’ 역시 나에게는 ‘결정적 순간들’중 하나로 기억된다. ‘공감각적 중장비 연극’을 부제로 표방하며 소리를 이미지로, 이미지를 냄새로 이동시키며 다른 감각들의 끊임없는 중첩을 시도했던 이 작품에는 트랜스젠더 앨리스의 립싱크와 난장이 배우가 연기하는 어린 왕자, 제약사 광고를 차용한 판피린 걸과 우루사 곰, 퓨전 국악, 마임, 르네 마그리뜨의 그림과 루이 부뉘엘 영화의 패러디, 퍼포머들과 함께 배우 정동환과 김지은 아나운서가 출연하고 지게차와 같은 중장비들이 등장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총체적’인 축제와 같았던 이 ‘포스트 드라마틱 시어터’ 앞에서 나는 선진국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을 잠시 느끼기도 했다.
당시에 작가는 “아르토의 잔혹극과 굿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구현하며 문학, 미술, 연극, 영화에서 훔쳐온 각종 이야기들의 충돌과 오버랩을 통해 부조리와 엽기적인, 언어적 설명이 불가능한 세계를 횡단”하고자 했다고 썼다.
이번 공연에서는 ‘무용극’ 버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오랫동안 연기해온 세 명의 무용수를 포함해 연극, 뮤지컬, 교회극 등 다양한 형식의 공연에서 예수로 출연했던 경험이 있는 퍼포머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이들은 직접 무대에서도 연출자의 역할을 맡은 작가의 지시에 따라 각자의 예수를 무대 위에 펼친다.
역할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유형의 분류 외에 그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원작이 한국에서 공연되기 시작하면서 누락된 것들이다. 1971년에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저항의 상징인 록음악과 대사 없는 오페라의 형식을 조화시킨 파격적인 무대, 인간적인 예수와 성경의 도발적인 해석으로 인기와 거센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원작의 의도와는 달리 한국에서 번안된 가사들은 더욱 종교적 색채를 띤 성극(聖劇)으로 변모했는데 이는 우리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작품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 유명한 솔로곡을 부를 때 번안된 가사와 다시 번역한 원래의 가사를 함께 낭독하고 서로 다른 무용과 연기가 동시에 펼쳐지는 후반부의 장면과 ‘수퍼스타’의 원본 가사 속에 들어있는 예수와 관객을 향한 비판적인 질문들이 막연한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언어로 대체되는 순간은 공연의 백미였다. 작가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바깥에서 그것이 놓인 사회적인 맥락을 통해 작품을 보도록 시야를 넓히고 도처에서 검열의 대상이 되는 우리의 처지를 ‘말한다’.(말했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같은 날 광화문 광장에는 빈 책상과 의자 304개가 놓였고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참가해 나름의 방법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작가의 도구인 ‘연장’은 어떤 의미인지, 또 세월호 이후의 이 기만적인 상황에서 예술가의 ‘연장’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거리에서도 물음은 끝나지 않는다.
이제 공연은 볼 수 없지만 ‘결정적 순간’은 이달 29일까지 서초동 예술의전당 안 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정민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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