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 있는 도산서원의 교육시설은 강학 공간인 전교당(典敎堂)과 도서관 역할을 한 광명실(光明室) 외에도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박약재ㆍ博約齋)와 서재(홍의재ㆍ弘毅齋)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산서원의 예에서 보듯이 조선시대 대표적 고등교육기관인 서원 대부분은 기숙사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유생들은 그 곳에서 함께 생활하며 유학자로 성장했다. 과거에 ‘동문수학’이라 말은 단지 한 스승 밑에서 배운다는 의미를 넘어서 함께 생활하는 것을 뜻하였다.
현대의 대표적 고등교육기관인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기숙사는 단순한 숙식 공간이 아니다. 대학 기숙사는 다양한 배경에서 성장한 학생들이 서로의 문화적ㆍ학문적 다양성을 이해하고 융합적 지식인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물적 토대이다. 지식의 세계에선 독립적인 개인과 개인이 만날 때 학문적 융합과 성장이 시작된다. 대학의 경우 여기에는 학생과 교수와의 만남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생의 만남도 포함된다. 대학은 단지 강의실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 또는 계층에서 성장한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성을 이해하고, 여러 학문 분야 사람과의 소통에 의해 융합적 사고력을 함양할 수 있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이 역할의 많은 부분은 대학의 기숙사가 담당하게 된다.
대학 기숙사의 이런 기능을 가장 잘 이해하고 미국 대학 교육의 혁신을 이룬 사람이 1909년부터 1933년까지 하버드 대학교의 총장을 역임한 로렌스 로웰이다. 당시 하버드 대학에선 부유층 학생들은 학교 밖의 고급 하숙집에서, 중하류층 학생들은 낡은 학교 기숙사에서 사는 거주 형태가 고착화하면서 계층간 분열 현상이 심각하였다. 로웰 총장은 이런 거주 방식이 하버드대 학생들의 다양성을 훼손한다고 보고, 일부 교수들과 부유층 학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든 학생이 대학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는 레지덴셜 칼리지(residential college) 시스템을 도입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스템 도입을 위해 필요했던 대규모 기숙사 신축이 예일대 출신의 에드워드 하크니스의 기부에 의해 가능했다는 점이다. 당초 하크니스는 모교인 예일 대학교에 새로운 기숙사 모델 도입을 조건으로 3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제안했으나, 예일대는 학내 논의 과정 등을 이유로 그 결정을 미루었다. 모교의 소극적 자세에 실망한 하크니스는 1928년 하바드대에 같은 제안을 했는데, 로웰 총장은 불과 10초 만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러한 로웰 총장의 적극성에 감동한 하크니스는 당초 기부 제안액보다 훨씬 많은 1,000만 달러를 하버드대에 기부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하버드 대학교의 전경과 학생들의 대학 생활은 경쟁 대학 출신의 이 두 사람의 새로운 생각과 자산에 터 잡아 완성된 것이다.
요즈음 대학들의 기숙사 신축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대학가에서 원룸과 하숙집을 운영하는 주민들은 생존권이 위협받게 된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고,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안전한 거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찬성하고 있다. 원룸과 하숙집이 주민들의 주요한 자산 또는 소득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지만, 주거비로 인한 학생들의 어려움도 도외시하기 어렵다. 서울 자치구별 청년 주거빈곤율을 보면, 대학가가 가장 그 비율이 높다. 그럼에도 서울 소재 주요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평균 9.8%에 머물러 있고, 그 절반 이상은 수용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대학 당국이 기숙사와 관련한 학생들의 호소를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대학들이 학생들의 학문적 융합과 성장의 토대라는 관점에서 기숙사를 바라본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학들은 기숙사의 양적 확대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의 구축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버드대가 그러했듯이, 대학의 이런 노력은 대학 구성원의 다양성 및 학문적 융합을 유지, 촉진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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