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ㆍ손보협 관피아 배제 등 불구
대부분은 내정설 인사가 자리 차지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관료 출신) 배제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주요 금융기관 수장에 민간 출신들이 속속 임명되고 있다. “외부 입김이 크게 줄어들었다” “더 이상의 관피아는 없다”는 자평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무늬만 민간일 뿐 ‘윗선’에서 내정한 인사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여전히 적지 않다. 넘어야 할 산이 더 많은 ‘반쪽 자율’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18일 첫 회장후보추천위원회 회의를 열고 차기 협회장 선출 작업에 들어간 생명보험협회. 현재 유력한 후보군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들은 이수창 전 삼성생명 사장, 고영선 교보생명 부회장, 신은철 전 한화생명 부회장 등 ‘생보 빅3’의 전ㆍ현 경영진이다. 앞선 8월 업체 출신 간 경쟁 끝에 LIG손해보험 출신인 장남식 회장을 선출한 손해보험협회와 마찬가지로 관료 출신은 후보군에서 아예 배제돼 있다. 물론 금융당국과의 관계 등이 최종 선출에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있긴 하겠지만, 두 자리 모두 줄곧 관피아의 몫이었고 금융당국의 암묵적인 승인이 반드시 필요했던 이전 관행을 감안할 때 큰 변화임이 분명하다. 지난 달 KB금융 회장 선출에서 최종 낙점된 윤종규 내정자와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 간에 막판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피 말리는 표 대결이 이뤄진 것도 윗선의 입김이 많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금융투자협회 역시 내년 1월 차기 회장 선출을 앞두고 열기가 뜨겁다. 하나 둘 경쟁에 뛰어들면서 유력하게 거론되는 민간 출신 후보만 벌써 5, 6명에 달할 정도다. 금투협은 167개 회원사가 선거권을 가지고 있어 지금까지도 밀실 인사에서 살짝 비껴있었던 곳. 최근의 분위기와 맞물려 여느 때보다 더 경쟁이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여전히 선출 과정이 투명하지 못한 금융기관이나 협회도 상당수다. 지난 달말 취임한 김옥찬 SGI서울보증 사장은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되기 이전부터 이미 내정설이 파다했다. 더구나 서울보증 사장 출마를 위해 KB금융 회장 후보에서 자진 사퇴를 하면서 이런 의혹을 더욱 부추겼다. 금융권 고위 인사는 “적어도 최종 결과만 놓고 보면 공정성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이 차기 은행연합회장에 내정된 것을 두고도 그 절차에 문제 제기를 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사회나 회원사 총회가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낙점을 받은 탓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제로 의견을 제시해야 될 은행장들은 배제된 채 금융당국이 낙점을 했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이 뿐 아니다. 공공기관이었지만 2012년 민영화한 기술신용평가기관인 한국기업데이터(KED)도 차기 사장에 금융당국이 낙점한 공기업 인사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최근 상임감사직에 금융권 경력이 없는 최경환 부총리 매제 장병화씨가 임명되기도 했다. 산은금융지주가 최대주주인 대우증권이 전임 김기범 사장이 사퇴한 지 3개월 넘게 공석임에도 불구하고 사장 선임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을 두고도 청와대 개입설 등이 끊임없이 나돈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단지 관피아만 배제하고 형식만 갖춘다고 해서 인선이 투명해질 수는 없다”며 “청와대나 당국의 인식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자율 인선은 요원하고 오히려 질적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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