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노동의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노동의 가격만이 유일한 관심사이자 숭상하는 가치이다. 한달 동안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번 돈, 1시간 동안 주식으로 번 돈, 그림 한 점을 그려서 번 돈의 액수가 같다면, 자본주의 관점에서 노동의 가치는 모두 동일하다. 그래서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직업일수록 좋은 직업으로 간주된다. 며칠 전 공개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은 올 1~9월 동안 25억100만원으로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가장 많은 보수를 받았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급여와 상여금을 합쳐 15억4,800만원, 김종준 전 하나은행장이 9억4,700만원을 받았다. 다른 주요 은행과 금융지주 회장들의 9개월 동안의 보수가 대체로 5억원 이상이었다. 월급으로 환산한다면 하영구 전 행장의 경우는 한 달에 3억원에 조금 못 미치는 보수를 받은 셈이다. 주 5일 근무 기준으로 환산하면 일당이 1,500만원 정도이다.
2012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직장인의 평균 연봉이 20대는 2,500만원, 30대는 3,800만원, 40대는 5,100만원, 50대는 4,900만원, 60대는 2,900만원 정도였다. 올해는 조금 올랐다고 쳐도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평균 연봉과 주요 은행장들의 평균 연봉의 차이는 수백 배에 이른다. 급여와 상여금만 놓고 보자면 직장인 가운데는 금융권의 최고경영자들이 가장 비싼 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 전 행장이 이틀만 일해도 20대 직장인들의 1년 평균 연봉보다 많이 번다. 물론 중요한 결정을 하는 만큼 노동의 가격이 비싸겠지만, 그로 인한 조직의 성과가 몇몇 소수에게만 집중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만하다.
요즘 ‘미생’의 바람이 뜨겁다. 2012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다음 만화속 세상에서 연재돼 총 1억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던 인기 콘텐츠였는데, 한 케이블방송사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신드롬에 가까운 호응을 얻고 있다. 인기의 핵심은 공감이다. 임시완이 연기하는 주인공 장그래는, 고졸출신으로 요즘 보기 드물게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는 청년이다. 그를 비롯해 대기업과 하청기업에 걸쳐 인턴부터 정규직 상사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치열하게 밥벌이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짠하니 남의 일 같지 않다. 마지막 145수를 둘 때, 장그래는 과연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고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90년대까지 직장을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드라마는 장그래처럼 가난한 집안 혹은 못 배운 샐러리맨이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고, 아름다운 여자와 사랑도 이룬다는 서사였었다. 만약 ‘미생’도 그런 ‘직딩의 성공 신화’로 펼쳐졌다면, 지금을 살아가는 보통의 직장인들에게 이토록 뜨거운 공감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공감은 자각으로 향한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작업복을 입은 생산직 종사자만 노동자로 간주한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가방을 들고 빌딩 안으로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 전화를 받고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는 사무직 종사자들은 스스로를 관리자 혹은 화이트 칼라로 믿는다. 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자본주의에서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어떤 조직에 판 대가로 월급을 받는 모든 이들은 노동자이다. 파리 유학 시절, 예산 삭감에 반대 데모를 하는 경찰관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길거리 행진하는 소방관들의 모습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인식하고 있었고,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싸웠다. 권리는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들만이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미생’에 등장하는 보통의 직장인들이 깨어나야 한다. 우리가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열심히 일하는 데도 실질소득은 줄어드는 기묘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1%가 아닌 99% 다수의 가치가 수면 위로 발현”되기를 바랐다고 ‘미생’의 윤태호 작가는 말했다. 우리 사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의 가격이 과연 적당한지 재검토 해야 한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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