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합병 막아
기업들 앞으론 구조개편 하려면
이익공유 등 주주설득 적극 나서야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라는 돌발 변수에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통합이 무산된 19일 두 회사는 큰 충격에 빠졌다. 최악의 불황을 돌파하기 위한 ‘회심의 카드’를 꺼내지도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은 당장 나이지리아 ‘에지나 FPSO(부유식 원유생산ㆍ저장ㆍ하역 설비 프로젝트)’의 공정 지연을 만회하기 위해 삼성엔지니어링의 인력을 활용하려던 계획에 대해 재검토에 들어갔다. 합병을 전제로 세웠던 내년 경영계획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할 처지다.
두 회사는 9월 1일 육상과 해상을 아우르는 25조원 규모의 초대형 종합 플랜트 회사가 되겠다며 합병을 결의했다. 삼성중공업은 해양플랜트, 삼성엔지니어링은 석유화학플랜트에서 강점을 갖고 있던 만큼 합병으로 시너지를 얻는다면 재도약의 발판이 마련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삼성중공업은 거제조선소와 서울 서초사옥에 나눠져 있던 해양플랜트 분야 설계, 연구개발(R&D) 인력을 삼성엔지니어링의 서울 상일동 본사와 20분 거리에 있는 경기 성남시 판교 R&D센터에 입주시키는 것을 비롯해 관리직 인력의 슬림화, 원가절감을 위한 통합 구매 등 착실히 합병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육상과 해양 플랜트사업 부문의 공통점은 주요부품 구매 정도에 그쳐 2년 안에 시너지를 내기 쉽지 않다며 ‘무리한 합병’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삼성엔지니어링의 공사 손실이 삼성중공업으로 전이돼 삼성중공업의 부담만 키울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허문욱 K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전 세계적으로 플랜트 수주 물량은 줄어들고 있는데다 중국 업체들의 무서운 추격과 엔저를 등에 업고 가격 경쟁력을 키운 일본 업체들의 부활 등 현재 이 분야 업황은 곳곳에 암초 뿐”이라며 “합병이 무산됐더라도 두 회사는 위기 탈출을 위해 협력을 해야 하고 하루빨리 대안을 찾지 못한다면 두 회사는 물론 한국 플랜트 업계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두 회사의 합병 차질이 삼성그룹이 진행하고 있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더 많은 비용이 들게 하면서 자칫 구조 개편의 속도를 늦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회사 리서치센터장은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면서도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주가 전망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주주들이 구조개편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 줄 수 없다는 뜻을 확실히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삼성그룹으로서는 주주들의 반대로 인해 구조 개편 작업에 드는 비용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고, 이 경우 주가가 내려가기를 기다리거나 자금 확보에 시간이 더 필요해지기 때문에 구조 개편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김영준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을 포함한 대기업들은 구조개편을 일방적으로 발표만 하고, 주주들을 설득하는 데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번 합병무산을 계기로 앞으로는 구조 개편을 성사시키려면 주주들이 언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등의 구체적 내용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대기업들에게 주주들에 대한 배당액을 올릴 것을 요구하고 나선 점을 감안하면 올해 결산이 끝난 뒤부터 대기업들이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합병 무산이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예상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두 회사는 오너 지분이 전혀 없고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 이나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에도 포함되지 않은 계열사라 지배 구조 변화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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