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라니 머리를 깎은 스님 300여명이 한반도기를 들고 걷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것도 한국, 중국, 일본의 승려들이다. 19일 오후 1시 40분, 경기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통일대교에 이르는 길이다. 이 1㎞의 좁다란 민통선 철책길이 한반도를 넘어 세계의 평화를 바라는 ‘기원의 길’이 됐다. 3국이 해마다 여는 불교계 국제행사인 17차 한중일 불교우호교류대회의 일환이다.
중국에서 온 푸정 스님(중국불교협회 국제부장)은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는 행복을 누리게 되기를 기원하며 걷고 있다”며 “한반도가 통일로 가는 길에 세계평화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국의 불교계가 남한의 최북단 인근에서 평화 행진을 하는 건 처음이다. 대열의 맨 앞에 한국ㆍ중국의 대표단장 스님과 함께 선 다케카쿠쵸 스님(일본불교대표단장)은 “남북 분단의 현실을 목도할 수 있는 현장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감격스럽다”며 “남북의 통일,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곧 부처님의 염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행진 뒤 3국의 사부대중(남녀 승려인 비구, 비구니와 남녀 신자인 우바새, 우바이)은 파주 도라산 통일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북한의 송악산이 바로 앞에 보이는 곳이다. 남과 북의 비무장지대(DMZ) 내 대성동 마을, 기정동 마을의 태극기와 인공기가 100여m 깃대에 경쟁하듯 꽂혀있는 모습 역시 볼 수 있다.
개성 영통사 복원에 참여해 15년 전부터 북한을 세 번 방문한 적이 있다는 일본의 니시오카 스님은 “영통사는 보이지 않아 안타깝지만 과거 개성을 찾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며 감격스러워했다.
3국의 불교계 대표단은 오후 3시부터 통일전망대 안보관에서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법회를 봉행했다. 법회는 3국 각각의 예불의식을 모두 담아 이뤄졌다. 예불 뒤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울려 퍼졌다. 한국 불교어린이합창단이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였지만, 일본과 중국에서 온 스님과 신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의 의미에 함께 했다.
이날 3국 불교계는 공동선언문을 통해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이곳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불자들은 부처님 전에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발원했다”며 “전쟁은 훼불이자 반불교적 행위이고 잔인한 폭력이라는 인식을 같이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3국의 불교도는 어떤 형태의 분쟁에도 반대한다”며 “평화를 위한 다양한 분야의 협력사업과 연대 행동에 동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주=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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