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음악인 오케스트라서 영감...남북 청소년 오케스트라 5년째 추진
천안함 등 남북 정세 급변 번번이 무산
"내년 광주유니버시아드 대회 맞아 전 세계에 남북 평화 알리고 싶다"
남북 청소년 오케스트라 연주를 추진하고 있는 린덴바움 원형준(38) 대표는 1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과 북은 ‘히어(Hear)’가 아닌 ‘리슨(Listen)’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들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히어’라면 ‘리슨’은 남의 얘기를 귀담아 듣는 능동적 행위인데, 남북 관계에서는 ‘리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 대표는 “오케스트라가 좋은 하모니를 내는 이유는 내 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 남의 소리를 듣기 때문”이라며 “남북 관계 역시 내 주장만 내세우면 불협화음만 나올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 줄리어드 음대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원 대표는 내년 7월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남북 청소년 80여명으로 구성된 ‘원(one) 심포니’가 세계인을 상대로 멋진 공연을 펼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린덴바움(Linden-Baum)이란 독일어로 ‘보리수’를 뜻한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하나의 숲을 이루듯, 다양한 악기가 모여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원 대표가 ‘남북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추진한 것은 2009년부터다. 바이올린 스승이자 필라델피아 필하모니 악장인 데이비드 킴의 추천으로 일본에서 개최된 PMF(Pacific Music Festival)를 관람했는데, 다국적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서 하나된 화음이 나오는 걸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또 대표적 분쟁지역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 출신 음악가들로 구성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1999년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구성한 오케스트라인데 전 세계적으로 활발한 공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프로젝트 시작 직후인 2009~2010년 초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천안함 폭침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남북 정세가 극과 극을 달리면서 추진이 어려워졌다. 2011년 6월 음악 감독인 샤를르 디뚜아가 평양을 방문해 북측 관계자들과 남북 청소년 오케스트라 구성에 관한 협의까지 진행하면서 급물살을 타는 듯 했지만,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무산됐다. 2013년에는 남한이나 북한이 아닌, 제3국에서의 공연을 제안하면서 북한 유엔대표부에서 이를 긍정 검토하는 등 전환점을 맞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또다시 분위기가 흩어졌다.
원 대표는 그러나 “2015년은 분단 70주년, 독일 통일 25주년 등 국내외적으로 평화의 기류가 형성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특히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세계인이 참가하는 대형 스포츠대회인 만큼 남북 평화를 알리는데 더 없이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대회 조직위에 공연 계획을 제안,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최근에는 국내외 연주회와 강연을 진행하면서 남북 오케스트라의 당위성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1960~70년대 미국 필라델피아 필하모니의 당시 중공 공연과 보스턴 필의 당시 소련 공연, 2008년 뉴욕 필의 평양 공연 등 오케스트라 외교의 효과는 매우 큽니다. 남북관계가 좋아진 다음에 연주를 하는 게 아니라 연주를 통한 화해 무드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양국 정부의 문을 두드리겠습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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