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공직자의 언론에 대한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 등 정부기관 뿐 아니라 비서실장, 청와대 비서관, 장관 등 공직자들도 소송에 나서고 있다. 소송 형태 또한 다양하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대한 중재신청부터 명예훼손 형사고소, 민사 손해배상 소송, 정정보도ㆍ반론보도 청구, 게시금지ㆍ기사삭제 청구 등 여러 형태의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소송의 대상 또한 스트레이트 기사 이외에도 해설기사, 논평 등 언론 보도의 모든 형태를 망라하고 있다. 특히 언론에 보도된 기사가 아닌 기자의 취재 행위까지 소송의 대상이 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한 청와대 비서관은 언론사 기자가 자신의 비리 의혹과 관련, 진위 여부를 취재하자 이러한 취재 행위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다며 고소를 했다. 기자라면 정부 또는 공직자로부터 취재를 중단하라는 직ㆍ간접적 압력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취재 행위 자체를 봉쇄하기 위해 형사 고소를 하는 것은 소권의 남용에 가깝다.
정부와 공직자의 언론에 대한 소송은 필연적으로 기자의 취재 활동을 위축시킨다. 소송의 당사자가 된 기자는 소송이 종료될 때까지 언론중재위원회와 경찰서, 검찰, 법원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하고,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나아가 자칫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돼 전과가 남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거액의 손해배상을 할 수 있다는 불안함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하는 홈즈-라헤 스트레스 지수에 따르면 배우자의 사망이 충격 정도가 가장 높았고, 이혼이 그 다음이다. 3위는 가족의 사망과 형사 처벌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정부와 공직자로부터 고소를 당하면 가족의 사망과 동일한 정도의 충격을 받으며, 여기에 수천만원, 수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소송이 더해지면 그 스트레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잠이 오지 않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소송을 제기하는 정부와 공직자의 의도는 뻔하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싶은 것이다. 비판적 보도를 하면 각종 소송에 휘말릴 수 있으니 알아서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를 할 경우 최소한 2~3년은 소송전에 시달려야 한다.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지칭되는 이러한 소송은 이기기 위한 목적이 아닌 단지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목적으로 제기되는 소송이라 소송 기간이 장기화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언론이 소송의 부담에서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도록 전략적 봉쇄소송을 봉쇄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 20여개 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전략적 봉쇄소송 규제 법률은 이 소송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민사소송법 425.16조는 “사회적 문제와 관련돼 헌법에서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행사하는 행위로 인해 제기된 소송은, 당사자의 특별 신청에 따라 법원이 이를 조기에 각하해야 한다. 다만 원고가 당해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언론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이 제기될 경우, 언론은 이 소송이 전략적 봉쇄소송에 해당한다는 점을 주장해 신속하게 각하 판결을 받고 소송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소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각하제도와 약식판결 제도가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위와 같은 제도를 직접 도입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법원의 재량으로 원고에게 주장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입증자료를 요구한 후, 이를 심리해 조기에 각하 또는 기각 결정을 내리는 방법이 있다. 또한 전략적 봉쇄소송이라 판단될 경우 별도의 기일을 지정해 신속한 결정으로 소송을 조기에 종결시킬 수도 있다.
권력과 언론은 본질적으로 갈등 관계에 있다. 권력을 비판하고 의혹을 파헤치는 것은 언론 본연의 역할이다. 50년 동안 백악관 맨 앞자리에서 미국 대통령에게 곤혹스런 질문을 던진 헬렌 토머스 기자는 “권력자에게 질문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권력자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의혹을 파헤칠 기회를 언론에 주어야 한다. 전략적 봉쇄소송에 대한 봉쇄가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허윤 법무법인 예율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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