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해 앞발을 휘젓고 있는 백마 위에서 큰 이각(二角)모자를 쓰고 군대를 지휘하는 나폴레옹.’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가 1800년 5월 알프스산맥의 생베르나르 협곡을 넘어 이탈리아로 진격하는 모습을 프랑스 화가 다비드(1748~1825)가 그린 그림이다. 1970, 80년대 학생들의 필독서였던, 동아출판사의 중학교 참고서 ‘완전정복’ 시리즈 표지에 나와 친숙하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그림 하단엔‘내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말은 없다’는 그의 어록도 씌어 있었다.
▦ 나폴레옹을 상징하는 이각모자가 유행한 건 프랑스 혁명(1789~1794) 때부터. 17, 18세기 유럽 상류층이나 군장교 등 전문직 종사자들은 인조가발과 삼각모를 썼다. 인조가발은 머리에서 어깨까지 내려왔는데, 중세기사들이 쓰던 챙이 넓은 모자의 세 부분을 말아 올린 삼각모는 여기에 덧쓰는 일종의 장식용이었다. 하지만 인조가발에 색색의 밀가루를 뿌려 꾸미는 풍습이 생겨났고, 프랑스혁명 직전에는 한해 200만 파운드의 밀가루가 여기에 쓰여 식량난을 가중시킬 정도였다. 혁명 후 사라진 인조가발 착용 풍습과 3각모 자리에 큰 베레모 스타일의 이각모가 1790년대부터 장교들의 유니폼의 일종으로 채택됐고,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때까지 널리 쓰였다.
▦ 이각모가 유독 나폴레옹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이유는 분명치 않다. 157㎝가 조금 넘는 작달막한 키에 빈약한 체구였던 그의 외모와 연결 짓는 시각이 있다. 평균 180㎝가 넘는 황제근위대에 둘러싸이면 더욱 초라하게 보여 일부러 큰 모자를 썼다는 것. 단신(短身)의 대명사가 놀라운 카리스마로 부하들을 통솔해 유럽을 정복했다는 사실은 그를 더욱 드라마틱한 영웅으로 만들었다. 당시 유럽의 반나폴레용 진영에선 그를 지저분한 장화를 신은 채 커다란 이각모에 파묻힌 형상으로 희화화하기도 했다.
▦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이 나폴레옹의 이각모자를 26억원에 낙찰 받았다. ‘닭고기를 파는 회사가 웬 나폴레옹이냐’는 질문에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한 나폴레옹을 통해 기업가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서였다”고 답했다. 병아리 10마리로 시작해 연매출 4조8,000억원의 기업을 일군 김 회장의 하림이 ‘이각모자 정신’에 힘입어 세계 속의 닭고기회사로 거듭난다면 괜찮은 투자가 아닐까 싶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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