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창 가곡 이수자 황숙경 28일 공연
선비들의 풍류인 정가(正歌)는 결코 넘침이 없다. 시조, 가사 등 문학적 아취가 가득한 텍스트에 선율을 얹어 부르는 이 양식은 결국 정신 도야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여성 가객 황숙경(49)씨는 정가를 한국적 페미니즘을 구현하는 디딤대로 바꿨다.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통해 2012년 황진이, 2013년 매창 등 조선 명기들을 드라마와 정가로 그렸던 그가 이번에는 조선의 여류 문인 허난설헌의 치마자락으로 안착을 시도한다. 28일 오후 7시 30분 한국문화의 집 코우스에서 열리는 공연에서 그는 창작 정가 11곡 등을 부른다.
그가 정가 한 수를 부르는 데는 10분이 넘기도 한다. 너무 유장하게 부르다 보니 이 시대 사람들이 헷갈리기까지 한다. “현대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부릅니다. 해설자가 군데군데 나와 설명을 해주니 관객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돼요.” 이 서사극적 무대에는 성우 김석환이 설명하고 샌드 애니메이션 아티스트 정명필의 동영상까지 거든다.
무대가 황씨를 필요로 하는 것은 현대 국어로 지어진 텍스트가 원류 정가 창법으로 실현돼야 하기 때문이다. 황씨는 이번 공연에서 선보이는 창작 정가를 두고 “정가의 가능성이 집약된 시도”라며 “옛 여인을 우리 시대로 올곧게 데려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창작 정가 외에 과거에 다섯 차례 낙방한 남편을 위로하는 대목이나 어린 자녀를 잃은 참척의 비애를 그린 ‘엄마의 진혼곡’ 같은 감성적인 노래는 남도의 계면조 등 민요 창법으로 부른다. 국립무용단 이종호씨가 난설헌의 남편과 동생 허균 등 두 명의 역을 맡아 무용적 연기에 대사를 겸한다.
공연 시간 75분을 음악적으로 떠받칠 연주자 6명은 대금, 거문고, 피리, 생황, 아쟁, 장고 등 국악기는 물론 하프도 연주한다. 수원대 성악과 학생 3명, 국악중학교 학생 5명 등 황씨 제자들의 코러스까지 더해져 무대가 풍성해진다.
무대는 알고 보면 40여 년 국악 경력, 그것도 비대중적인 정악 분야만 파고든 황씨의 고육책이기도 하다. “정악으로만 가졌던 세 번의 독주회 무대에서 느낀 외로움과 안타까움, 그와 동시에 커져온 의무와 책임의 종합판이랄까요.”
황씨는 국악고 3학년 때 인간문화재 김월하를 담임으로 만나면서 정가와의 긴 인연을 맺었다. “선생님으로 보자면 극찬이었던 ’그만하면 됐다’ ‘우리 할머니 닮았다’는 말씀을 다 들었어요, 제가.”
김월하를 만난 것은 인간문화재 30호 여창 가곡 이수자라는 현재를 가능케 한 정통성의 출발점이었다. 2001년 발표한 더블 앨범 ‘가향(歌香)’은 음반 사상 최초로 정가로만 이뤄진 음반으로 기록된다. 단 한 번 녹음(원 테이크)으로 종일 매달려 만든 이 CD에 그는 점수를 준다면 70점 정도될 것이라고 한다. 거문고 악보에 근거한 ‘서경별곡’ 등 고려 가요 또한 그의 관심사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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