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예찬론자 고전평론가 고미숙씨
춘향전, 맹자, 동의보감 내경편 등
고전낭송집 7권과 지침서 펴내
소리 내어 읽어본 게 언젠가. 하물며 대화도 문자로 하는 시대다. 이런 요즘, 낭송 예찬론을 펴는 학자가 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54)씨다. 최근엔 책 시리즈까지 냈다. 고전을 읽기 좋게 바꾼 ‘낭송 Q시리즈’(북드라망)다. 고씨가 기획하고 감이당, 남산강학원, 규문의 연구원들이 “풀어 읽었다”. ‘시즌 1’은 ‘낭송 춘향전’, ‘낭송 논어/맹자’, ‘낭송 아함경’, ‘낭송 열자’, ‘낭송 열하일기’, ‘낭송 전습록’,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의 7권이다. 고씨는 이 낭송 시리즈의 지침서인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를 썼다. 현재 그는 총 28권을 계획 중이다.
그에게 물었다. 왜 낭송인가? “낭송은 훈련이에요. 소통의 기본기를 닦는 훈련. 목소리는 타인의 신뢰를 얻고 관계를 맺는 중요한 요소인데, 요즘엔 대화도 ‘터치’로 하다 보니 이런 훈련이 안돼있어요.”
뿐만 아니다. 낭송은 지성을 연마하는 도구다. 따지고 보면, 영성과 지혜의 뿌리는 글이 아닌 말이었다. 성경이, 논어가, 불경이, 일리아드 오디세이가 그랬다. 그런 힘을 가진 게 말인데, 요즘 말은 황폐해졌다. 당황스럽도록 황당할 때는 “헐”, 너무나 놀라 감동마저 느낄 겨를이 없을 때는 “대박”이 보편적인 감탄사가 된 때다. “내가 구사하는 언어 만큼이 내 존재의 크기인 법인데 요즘 한국어를 풍요롭게 구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그가 ‘고전 낭송’을 들고 나온 이유다 “일상의 희로애락, 질펀한 저잣거리의 소문, 최고의 고담준론까지 고전에서 배우자는 거죠. 욕을 해도 좀 풍성하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어떻게 낭송해야 할까. “핵심은 외기”라고 고씨는 말한다. ‘암기’와는 다르다. “암기가 음을 지운 상태에서 의미의 단위로 텍스트를 먹어 치우는 것이라면, 암송은 소리로 텍스트를 몸 안에 새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외워 말하지만, 궁극에는 텍스트에서 자유로워지는 게 낭송이다. 고씨 자신이 이미 학창시절 경험했다. 대학 4학년 때 고전문학 강독 수업을 들을 때다. 교재는 띄어쓰기, 쉼표, 마침표도 없이 빼곡한 중세고어의 향연이었다. 그런데 교수는 큰소리로 읽는 강독을 시켰다. “눈으로는 도무지 뭔지 모르겠던데, 이럴 수가! 읽다 보니 목소리가 알아서 띄어 읽고 마침표를 찍더군요.” 몸에 밴 모국어의 리듬이 만든 반전이었다. 더불어 고전 낭송으로 그는 ‘공부의 기쁨’까지 누렸다. 이후 아예 전공을 한국고전문학으로 바꿔 고전평론가의 삶을 살게 된 계기가 됐으니 낭독의 첫 경험은 그의 인생까지 공명시켰다.
지금 고씨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낭독의 놀라움을 전파한다. 공부 공동체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에서 학기마다 낭송 오디션을, 해마다 낭송 페스티벌을 열면서 학생들과 함께 낭송의 기적을 체험했다. “인류 최고의 지성과 접속하고 지혜를 몸으로 표현하면서 느끼는 행복과 자존감, 이 기쁨을 다른 이들과 함께 누리는 우정의 네트워크까지 만들어지는 경험을 했죠.”
낭송은 치유의 힘까지 있다고 그는 믿는다. 지구 대기권의 평균 주파수인 ‘슈만공명’의 주파수가 뇌파의 평균 주파수와 일치하는데, 바로 이 주파수를 가진 게 고전이라는 것이다.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소리인 고전 낭송으로 내 몸과 우주가 감응하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휴식이 있을까요?” 이 낭송 시리즈에 ‘큐라스’를 뜻하는 ‘Q’를 붙인 연유도 여기에 있다. 큐라스(curas)는 케어(care)의 라틴어로 배려, 돌봄, 치유를 의미한다. 그래서 고씨는 오늘도 낭송을 권유한다. “말의 흐름에 접속해서 그 기운을 훔치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해요, 크고 낭랑한 목소리로.”
김지은기자 lun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