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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지역갈등에 대한 다차원적 대응 전략

입력
2014.11.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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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에 ‘김대중 공원’, 전남에 ‘박정희 산단(산업단지).’ 얼마 전 필자의 눈길을 끈 한 기사 제목이다. 4일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경북ㆍ전남 지역 의원 및 도지사와 도의회 의장, 시장, 군수 등 80여명의 정치지도자들이 모여 주최한 동서화합포럼 간담회에서 ‘전(前) 대통령 네임 활용사업’을 비롯한 양 지역의 상생협력과 교류 방안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정치권에서 책임지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이겠다는 것 같아 호기심이 발동했고 혹시 우리 엘리트 정치문화에서 긍정적 변화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관련 기사들을 더 찾아보았다.

‘혹시’ 했다가 ‘역시’라고나 할까. 작년 12월 결성돼 올해 초 고(故) 박정희,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생가를 교환 방문한 후 별 활동이 없다가 오랜만에 재개된 포럼은 기사의 제목처럼 말은 근사했지만 기본적으로 동서화합이라는 미명 하에 두 지역의 예산 확보를 위해 조직된 모임으로 변질된 듯 했다.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예산을 많이 따와야 한다’거나 반농담조일지언정 최경환 경제부총리에게 “예산만 책임져 주면 지역 발전을 위해 영혼을 팔겠다”는 말이 오갔다 한다. 내년도 지역 예산 문제와 함께 최근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숙제로 주어진 선거구 획정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공동모색하자는 얘기도 있었다 하니 이번 포럼은 양 지역 정치인들의 ‘예산 짬짜미’ 혹은 자신들의 지역구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담합에 지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지역갈등은 다차원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크게 구조, 제도, 문화ㆍ행태의 세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지역갈등은 우리사회 최대 병폐 중 하나지만 극복하기 힘든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아니다. 서구의 지역갈등, 가령 영국 스코틀랜드, 스페인 카탈루냐,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문제와 비교했을 때 우리의 지역균열은 고질적이거나 고착화돼 있다고 볼 수 없으며 언어나 인종적 균열과 중첩돼 나타나고 있지도 않다. 오죽하면 벨기에의 경우 왈룽과 플랑드르 지역의 심각한 균열을 빗대어 두 짝으로 나뉘어 있는 ‘벨기에 와플’ 현상이라 부르겠는가. 우리의 경우 지역주의 투표행태는 줄어들고 있고 계층, 세대, 이념, 중앙ㆍ지방 등 다른 균열들이 교차적으로 부상함으로서 지역 균열의 두드러짐이 약화되고 있다. 문제는 사회구조보다 정치에 있다.

제도적인 차원에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다양하다. 각종 지역차별 시정정책과 지역균등발전 정책이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승자독식의 다수제 민주주의 제도, 특히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에 편승한 거대양당의 지역할거정치가 지역갈등의 문제를 증폭ㆍ심화시켜 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비례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선거제도의 도입과 합의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권력구조의 재편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여기서 문제는 정치권의 저항과 정략을 넘어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 개혁의 동력을 삼아 추진해나갈 수 있는 정치력과 전략이다.

문화ㆍ행태의 문제도 중요하다. 정치지도자들의 타협의 문화ㆍ행태는 합의제 민주주의 제도의 주요 성패요인이다. 제도개혁에 앞서 문화ㆍ행태적 요인이 중요하다. 서구 합의제 민주주의 실험에서 적대적인 분파세력들로 쪼개질 가능성이 있는 사회라 할지라도 엘리트 차원에서 분파세력들의 지도자들이 타협을 하고자 할 때 가능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벨기에의 경우 엘리트의 자질 중 협상력이 강조되며 심지어 왕가의 연설, 결혼, 자녀 교육 등에 있어서도 양 지역을 공히 존중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동서화합포럼의 이벤트성 회동, ‘예산 짝짜꿍’식 모임, 지역주의에 편승한 적대적 동거와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합의와 공존의 문화와 솔선수범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엘리트 정치문화뿐 아니라 일반 시민문화에 있어서도 지역균열을 넘어 신뢰의 범위를 사회 전반으로 넓힐 수 있는 ‘교량적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 내기 위한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퍼트남 같은 ‘사회적 자본주의자’들은 ‘혼자 볼링하기’보다 ‘팀을 만들어 볼링하기’를 대안으로 제안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는 제도개혁을 위한 시민사회의 동력을 축적할 수 있는 방안이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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