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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와 여권실세 구애경쟁… 고달픈 현대차

입력
2014.11.1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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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광주에 뭔가 만들거나 했다가는 오해 받기 십상이니, 더디더라도 시간을 두고 상황이 진정된 다음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 관계자가 요즘 ‘오비이락’(烏飛梨落)을 걱정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현대차 그룹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 의 목적지로 광주광역시를 택했고, 당초 이달 안에 시동을 걸고 구체적 청사진을 내놓으려 했지만 ‘일단 멈춤’ 상태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광주시와 여권 실세의 구애경쟁이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광주시는 7일 ‘자동차 100만대 생산도시’를 목표로 하는 ‘광주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 발족식을 열었습니다. 갈수록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고, 일자리도 늘리지 못하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시도인데요. 시 관계자를 비롯 정계 경제계 종교계 학계 언론계 노동조합 지역인사 등이 100여 명이 참여해 이 지역의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습니다.

광주가 아닌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열린 이 행사는 현대차그룹을 향한 ‘공개 구애’ 성격이 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100만대 생산도시를 현실화할 수 있는 방법은 현대차그룹이 움직이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현재 광주에 있는 유일한 자동차 공장이 기아차 공장입니다. 여기서 전기차 쏘울EV를 포함해 약 62만대 가량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자동차산업의 부상과 불투명한 경제환경 때문에 국내에 공장을 둔 한국지엠, 르노삼성 등은 장차 생산량을 줄이는 것을 검토하고 있지,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는 곳은 하나도 없는 실정입니다. 결국 현대기아차가 경쟁업체의 움직임과 정반대로 생산량을 38만대 더 늘려야 광주의 차 100만대 생산 꿈이 실현되는 셈입니다.

광주시는 요즘 대놓고 현대차그룹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초대 청와대 인사수석을 지내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도 인연이 있는 정찬용씨에게 자동차밸리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긴 것도 그렇습니다. 정 전 수석은 2008년 현대차그룹 인재개발원장을 지냈고,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에서 부위원장으로, 유치위 명예위원장이었던 정몽구 회장과 함께 활동했습니다.

윤장현 광주시장
윤장현 광주시장

지난달 초 윤장현 광주시장은 당초 예정에 없던 친환경 수소차 현대차 ‘투싼ix’ 시승식을 가진데다, 자신이 타고 다니는 ‘1호 관용차’도 오피러스(배기량 2656㏄)에서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만드는 쏘울EV로 바꿨습니다. 광주시는 9월에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자동차과’를 만들어 자동차 밸리 조성 추진 등을 전담하도록 했습니다.

광주시의 이런 공개 구애 움직임을 놓고 자동차 업계나 광주시 주변에서는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많을 것이라 는 우려가 우세합니다. 재계 관계자는 “공장 추가 건설이나 생산량을 늘리는 큰 그림은 철저한 보안을 지켜가며 구체화해 최고위층과 담판을 통해 오케이를 받은 다음 공개하는 게 순서”며 “지금처럼 자신의 패를 다 내놓아서는 될 일도 안될 것”이고 답답해 했습니다. 만일 자동차 공장 증설에는 실패하더라도, 탄탄한 부품회사라도 영입해야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데 이도 저도 아니게 돼버릴 수 있다는 얘기인데요.

광주시나 윤장현 시장이 이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기자와 통화한 광주시 자동차과 관계자는 “결코 현대기아차 측에 부담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우선 토지 조성, 세제 혜택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착실히 해가며 우리의 진정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에 업힌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에 업힌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광주시가 현대차그룹을 향해 다소 무리한 구애에 나선 숨은 이유는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자 올해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에서 전남 순천, 곡성 지역구에서 당선하며 파란을 일으킨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경쟁자’로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ㆍ관계의 시각입니다. 경쟁자 없는 싸움이라면 무리하지 않고 일을 진행할 수 있겠지만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광주시장이 긴장하게 됐다는 겁니다.

이 의원은 현 정부의 실세입니다. 그런 이 의원은 최근 순천과 곡성 지역 의정보고회에서 잇따라 “현대차그룹이 전남 지역에 20만~30만대 생산 규모의 자동차 공장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며 “그 공장은 광주와 가까운 곡성이나 전남 동부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발언했습니다.

현대차 그룹측은 “그런 일 없다”고 일축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의원은 한술 더 떠 “자동차회사와 관련된 인사들을 만나 공장설립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들었고 생산부지도 확인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요.

이 의원의 깜짝 발언도 구체적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지역구민에 대한 존재감 과시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한 광주 지역 정계 인사는 “이 의원은 재보선 선거 때부터 힘있는 여권 인사인 자신을 밀어주면 ‘폭탄 예산’과 각종 사업을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던 터라 최근 지역 관련 이슈에 대해 굉장히 공격적으로 나 오고 있다”며 “설사 당장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더라도 광주시로서는 이 의원의 추진력과 영향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광주시 측은 “광주를 자동차 생산 100만대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광주에 약속했던 내용이며 그 내용을 핵심적으로 추진했던 사람이 바로 이정현 의원”이라며 “그런 당사자가 광주 바로 옆에 또 다른 자동차 공장을 유치하겠다 나서는 것은 이중 플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광주시와 이정현 의원 측은 이후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데요. 광주시 관계자는 “순천에는 자동차 강판용으로 쓰이는 현대하이스코 공장이 있고, 마그네슘 등 소재 산업을 육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더욱 육성하고 광주의 자동차 공장과 함께 한다면 시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견제구를 날렸습니다. 이에 이 의원 측은 “광주 대도심에서는 자동차 증산이 어렵고 광주 외곽에 공장과 협력업체가 들어서야 한다”며 맞받아쳤습니다.

결국 당사자인 현대차 그룹의 의향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현대차는 광주시가 자동차밸리추진위원회 발족식을 열자 바로 이튿날 자료를 내서 “일부 언론에 게재된 광주자동차밸리 추진 관련 내용은 추진위원회의 의견”이라며 “현대차그룹은 발표 내용과 관련해 추진위원회와 논의나 협의한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또 이정현 의원 측 발표 내용에 대해서도 현대차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무언가가 있었던 적은 없다”고 부인했는데요.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전국 곳곳에 공장을 두고 있는데, 만약 광주ㆍ전남만 정치적 배려나 고려 때문에 공장을 짓는다고 한다면 다른 지역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했습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설사 무슨 계획이 있다손 쳐도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며 양측의 구애 경쟁에 답답해 하다고 했습니다.

차분히 상대의 마음을 읽고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사랑을 할 수 있는 법 않겠습니까.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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