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 마시고 물건 훔치던 아이들, 예술가·경찰·구청 함께 만든 교실서
음악 배우며 바르게 살 의욕 되찾아 "문화활동, 청소년 범죄예방 효과 커"
김민수(17ㆍ가명)군은 올해 6월 서울 난곡동 한 빌라에서 친구들과 자전거 두 대(60만원 상당)를 훔치다 적발됐다. 학교에서도 이미 벌점 과다로 교권보호위원회에 회부돼 학습분위기 저해 학생으로 분류된 상태였다. 아무런 인생의 목표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던 김군은 반년 만에 음악을 작곡하며 꿈을 키우는 학생으로 바뀌었다. 15일 서울 신림동 청소년센터 ‘친구랑’에서 만난 그는 “학교생활에 의욕이 없어 밖으로 나돌다가 호기심에 나쁜 짓을 한 것을 후회한다”며 “지금은 곡을 만든다는 목표가 있어 열심히 생활한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부터 음주와 본드 흡입에 오토바이 폭주까지 일삼던 이민욱(17ㆍ가명)군 역시 작곡을 시작하면서 애지중지하던 오토바이를 팔아 치웠다. 이군은 “술 담배를 하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는데 이젠 음악이라는 새 세상을 알게 됐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생각”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이들의 삶을 전혀 다르게 바꿔놓은 것은 서울 관악경찰서와 관악구청 등이 지난달 11일부터 8주간 토요일마다 2시간씩 작곡을 가르쳐주는 '피네 프로젝트'다. 이 프로그램에는 범죄로 입건됐거나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 중ㆍ고교생 8명과,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한 청소년 7명이 참여하고 있다. 김준수씨 등 뮤지션 2명이 작곡을, 시인 장혜령(30ㆍ여)씨가 작사를 돕고 있다. 피네 프로젝트는 ‘음악을 배우며 학생들의 재능도 꽃 피네’의 끝 두 음절을 딴 기획. 대상이 경찰서 문턱을 넘나들며 문제아 취급을 받던 학생들이니 ‘필까 프로젝트’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미 꽃망울은 맺혔다.
음악에 문외한이던 학생들이 처음부터 작곡을 한다는 것은 선뜻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오히려 놀란 것은 작곡을 가르치는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의 작곡 수업을 맡고 있는 인디밴드 ‘몽구스’의 리더 김준수씨는 “악기를 잘 다루지 못해도 작곡을 할 수 있는 연주 어플리케이션 ‘개러지 밴드’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어플리케이션이 설치된 태블릿 PC를 두드려 피아노, 드럼까지 다양한 음색을 척척 만들어냈다.
이날 학생들이 만든 곡은 가요 후렴구에 해당하는 20~30초 분량이었다. 이군은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날 때 느낌을 발랄하게 표현했고, 김군은 해질녘 집으로 돌아갈 때 받은 쓸쓸한 느낌을 곡에 담아 다른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박수 갈채를 받았다.
김씨는 “전문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이 수준급 화음을 만들어 깜짝 놀랐다”며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라고 평가했다. 양희승 관악경찰서 아동청소년계장도 “‘하지 말라’는 경고 위주의 교육보다 음악 같은 문화활동이 청소년 범죄 재발 방지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학생들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더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자작곡은 22일 작사, 녹음 작업을 거쳐 29일 서울 홍익대 인근 작은 카페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공개된다. 향후 일정을 듣던 한 학생이 말했다. “이쯤 되면 곧 꽃이 핀다고 말할 수 있겠죠?” 글ㆍ사진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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