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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함께하는 삶이 준 풍경

입력
2014.11.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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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온통 가을빛에 물들던 지난 11월 첫날에 결혼을 했다. 마흔 일곱에 치른 꽤 늦은 결혼이었다. 친구를 포함해 선후배 지인들에게 두루 소식을 전하고 혼사를 치르는 당일 하객들을 맞이하다가 그들의 다양한 반응에 웃음이 절로 나기도 했다.

첫 번째는 이제라도 장가를 가게 되었으니 무조건 잘 된 일이라는 측으로, 내 손을 꽉 잡고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감격의 눈빛이 빛을 발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니 아들딸까지 바로 낳아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루라며 덕담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50대 후반의 남성과 30대 이상의 여성들이 대부분으로 전체 중 대략 10~20% 정도 된다.

두 번째는 대부분 또래 이상의 남성 지인들인데 결혼생활의 단맛 쓴맛을 모두 맛 본 세대들이다. 측은지심의 시선을 감추지 않은 채 그 좋은 ‘총각’생활을 저버리고 무엇 하러 고난의 행군을 하려 하냐며 애처로이 바라본다. 축하의 미소 뒤에 좌우 입 꼬리가 아래로 처지며 굳게 다물리는 걸 보아, 너도 이제 ‘당한다’는 암묵의 판결문을 펼친 판사의 표정과 별 차이가 없다. 대략 20~30% 정도.

마지막으로 축하 인사를 전하는 이들 중 50% 이상,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일관된 반응도 있다. 우선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도둑놈’은 기본이고 ‘날강도’ 소리는 평범하다. 사실 결혼 사실을 공개한 순간 사방천지에서 욕사발이 날아들었다. 이들은 모두 아내 될(이젠 아내 된) 사람의 나이를 듣고 이런 반응을 보였다. 반려자의 나이는 나와 띠 동갑을 훌쩍 넘는다.

많은 지인들의 다양한 축하세례를 받으며 치른 혼사였지만 결혼은 내게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살아오면서 그 어떤 일에도 두려움으로 포기한 적이 없었다. 중동의 전쟁터들과 북한 땅 여기저기를 비롯한 국내외 격동의 현장들과 오지들을 두루 다녔고, 대부분 자의에 의한 걸음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별일 아니지만 당시에는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일들도 많았다. 여러 위험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거침없이 돌아다녔으나 결혼생활만큼은 정말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운명처럼 길과 방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 함께 하는 삶을 이루게 된 것이다. 가장 두려워하던 의식마저도 별 것 아닌 양 치르고 보니 지금은 살짝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결혼을 하고 나서 세상 보이는 것도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신혼여행으로 멀리 인도양의 어느 섬나라를 찾아가면서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바뀌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게 풍경은 타인의 삶이다. 늘 아이들이나 노인들의 굴곡진 삶이 눈에 들어 왔는데 이제는 가족이나 오래도록 해로한 부부들의 일상들이 눈에 콕콕 박혀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바닷가 포구에서 어린 아이에게 낚시질이나 헤엄을 가르치는 아비들의 모습이 가볍지 않았고 여든 살은 훌쩍 넘어 보이는 허리까지 굽은 백발의 노인이 카메라를 들고 아내의 뒤를 따르는 모습을 보며 괜스레 시선이 꽂히기도 했다. 그들에게 여전히 귀한 ‘하루’가 이어지고 있고 그 연세에도 아내를 위해 무언가 기념될 장면을 남기려고 카메라를 들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울컥하는 감동이 밀려오기까지 했다. 두 손을 맞잡고 해변을 걷거나 만찬을 즐기는 노부부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왠지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들이 보여주는 삶의 풍경들은 천국의 품과 비슷하다는 섬의 수려한 경관들 못지않게 몹시 아름답고 평화롭기까지 했다.

사진하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의 의미는 말할 나위 없이 크다. 홀로 아닌 둘이 함께 하는 삶이기에 ‘볼’ 수 있게 된 것들 앞에서 더없이 기쁜 마음이 가득해짐을 숨기고 싶지 않다. 대부분이 하는 결혼이니 뭐 특별한 ‘짓’을 했다고 말할 생각도 당연히 없다. 뭐랄까. 오늘도 그저 참 고맙기만 할 따름이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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