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11~12일 부산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의 의미는 매우 크다. 아세안 10개국은 이미 우리나라의 두 번째 큰 교역 및 투자 상대국이어서 그 긴밀한 협력관계는 앞으로 더욱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깊어질 것이다. 전 세계가 경제위기의 여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저성장, 고실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아세안은 비교적 순탄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와의 보완적 교역·투자 관계 또한 지속적 발전이 기대된다.
아세안은 젊고 역동적인 경제권이다.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정치체제하에서 의욕적인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2015년에는 아세안경제공동체가 구축돼 인구 6억3,000만 명, 경제규모 2조3,000억 달러의 커다란 단일시장이 출범한다.
앞으로 우리나라와 아세안의 관계는 교역과 투자를 확대하는 단선적 협력을 넘어 한류문화의 확산을 활용하는 경제ㆍ문화의 융합, 한국개발경험의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공유, 아세안인력의 한국진출에 따른 다문화시대 전개 등 복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이번 특별정상회의에서는 한국과 아세안의 21세기 신 협력 관계의 비전을 함께 모색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과 아세안정상들은 쌍무적 협력증진은 물론, 아시아 시대의 도래를 맞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나갈 것인지 진솔한 대화를 해야 한다.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시아의 집단적 정체성은 아직도 분명히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아시아 국가 간 역사와 영토를 둘러싼 갈등은 역내통합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세계 속에서 아시아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있다.
중국과 아세안 간 영토분쟁, 중국과 일본 간 역사ㆍ영토분쟁, 한국과 일본 간 역사 갈등이 확대 재생산되지 않고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되기 위해서는 아시아의 경제통합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아시아 국가들은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시키고 있다. 아세안은 그동안 아시아경제통합의 주도적 역할을 자임해 왔는데 중국, 일본과는 달리 역사적, 영토적 갈등의 소지가 없는 한국과 더불어 협상과정을 주도하고 중국, 일본을 중재하는 공동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지금 중국은 미국을 제외하고 아시아 국가들끼리의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고, 미국은 중국을 제외하고 일부 아세안국가 및 일본, 호주등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각각 별도의 경제블록을 형성한다는 것은 통합된 세계무역질서의 구축이라는 최선의 목표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 아세안은 중장기적으로 이 두 블록을 통합하는 비전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아직 미국주도의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의 협상에 정식으로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사전협의를 진행 중에 있고 아세안의 주요 국가들은 이미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RCEP(아세안 및 한ㆍ중ㆍ일,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6개국간 자유무역 협정)과 TPP에 모두 참여하는 한국과 아세안은 두 개의 거대지역주의를 통합해 새로운 세계무역질서를 구축함으로써 현재 위기에 처한 WTO(세계무역기구) 체제를 부흥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경제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별도의 질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의 설립추진도 그 일부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경제질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대립구도가 아니라 현재의 질서를 진화시키는 창조적 구도를 지향해야 한다. 그 원칙은 투명성, 개방성, 민주성이다. 이번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한국과 아세안의 정상들이 이 원칙에 합의한다면 이는 커다란 성과일 것이다.
이경태 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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