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을 너무 많이 해 목이 간 데다 감기 기운마저 있다 했으나 일단 북채를 잡고 앉으니 그 소리가 헌걸차기까지 하다. 남자 2명, 여자 4명의 국립국악원 판소리 선생 중 특히 활발하고 도전적이라는 저간의 평에 추임새라도 다는 듯하다. 최근 새 음반을 낸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이주은(42)씨는 요즘 음악극 ‘공무도하’ 의 막바지 무대 연습에 하루 해가 짧다.
극중 배역은 백수광부가 강 건널 제 만나는 포장마차의 주인 아낙이다.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동시에 죽음의 길로 들어선 혼백을 인도하는 저승사자 노릇을 한다. 그런데 몸에 밴 판소리가 아니라 낯선 서도소리를 해내야 한다. 그러나 이씨의 연습 모습에 연출자 이윤택씨는 “으시시하다, 딱이다”라며 손뼉을 친다. 결이 완연히 다른 판소리와 서도소리의 실험적 접합이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남도의 판소리에 경서도 메나리죠. 익지 않은 발성이라 눈 뜨고 잘 때까지 하루 종일 연습해요.” 전혀 다른 창법의 혼합은 그로서는 처음이다. 반응도 어정쩡하다. “서도 민요를 전문적으로 해온 사람 같다고도, 몸에 배인 판소리 창법을 못 벗어난다고도 해요.” 그도 그럴 것이 판소리가 크게 들이마셨다 터뜨리는 솔직한 소리라면, 서도 목청은 숨을 들이마시며 두성으로 소리 내는 절제의 소리다.
판소리 한 사람이 딴 목청도 시도한다. 퓨전이다. 그의 선택은 국악의 끊임없는 법고창신을 웅변한다. “어려서부터 해 왔고 죽을 때까지 할 판소리 여섯 바탕이 새로운 가사로 태어나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지만 사람들이 안 들어주면 주면 의미 없잖아요? 콜라보(collaboration)도 필요하면 하는 거죠.” 11월에 발표한 2집 음반 ‘Moments’는 필요를 넘어선 필연의 산물이다.
2010년 한-러 수교 20주년 무대로 ‘이주은과 친구들’을 남산국악당에서 공연했다. 그 때 러시아 피아니스트 빅토르 데이아노프와 함께 판소리 ‘춘향가’도 선보였다. ‘사랑가’에서 출발해 그리움, 이별 등을 그린 눈대목을 뽑아 해석한 것. 흔히 흥겹게 부르는 ‘진도아리랑’을 느리고 슬프게 변주했고, 스승인 만정 김소희가 부른 ‘상주아리랑’은 박자에 변화를 줬다. 그는 “상대를 음악적으로 배려할 줄 아는 데이아노프의 피아노는 말하자면 일고수 이명창의 이상을 피아노로 구현한 것”이라고 당시를 돌이켰다.
그의 당찬 행보는 6세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 5호 판소리 보유자 심영희 명창의 무릎제자로 보낸 33년의 세월이 받치고 있다. 서울대 국악과 3학년이던 1993년, 가까운 친구들과 눈치 보듯 판소리와 피아노를 혼합하는 작업을 한 것이 처음이다. 당시 소문을 들은 황성호, 안두진 등 컴퓨터 작곡가들의 부탁으로 샘플링 등 컴퓨터 작업에 합류해 대구전자음악제에서 판소리를 펼치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목청을 갖고 있다. 국악고 재학 당시 정악에도 이끌렸고, 목청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됐다. “판소리처럼 솔직한 발성만 최고라고 생각지 않죠.” 그는 “공식적으로 국악을 대표하는 국립국악원의 변신을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며 “후세에 물려줄 수 있는 음악을 생각하며 인터넷을 뒤져 새로운 음악에 대한 정보를 뒤지는 게 취미”라고 말했다.
“하고픈 건 겁나게 많은데요잉.” 앞으로의 숙제를 묻자 그는 진한 전라도 사투리로 받았다. 지금 그는 판소리 전통에 자신을 얹기 바란다. 판소리를 잘 아는 작가에게 좋은 사설을 부탁, 자신이 짠 가락을 얹는 작업이다.
대학 시절 신동엽의 ‘금강’을 대상으로 이미 시도해 본 일이다. 당시부터 매일 써 온 일기를 택스트로 창작 판소리 연습을 했다. 가락을 붙여 소리도 하고 녹음도 해 보았다. “이벤트성으로 끝날 음악이 아니라 켜켜이 쌓아 올리는 서사극으로 만들어 발표도 하고 싶은디….” 좋아하는 소설가들의 이름을 올리며 그는 어딘가 숨어 있을 ‘인연’을 이야기했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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