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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3년간 재활 치료 포기 안 한 것 가장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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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3년간 재활 치료 포기 안 한 것 가장 중요"

입력
2014.11.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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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오승환이 지난달 18일 마친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시리즈(CS)에서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사진은 오승환 선수가 이날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 9회 역투하는 모습. 도쿄 교도=연합뉴스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오승환이 지난달 18일 마친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시리즈(CS)에서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사진은 오승환 선수가 이날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 9회 역투하는 모습. 도쿄 교도=연합뉴스

마무리 투수는 고독하다. 그라운드의 가장 높은 곳, 마운드에 오르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동료들이 만든 아슬아슬한 점수를 지켜야 하는 상황. 극도의 압박감이 몰려오지만 믿을 건 자신의 공이다. 오승환(32ㆍ한신)은 그렇게 10년 동안 외로운 싸움을 하면서 316개의 세이브를 수확했다.

그는 내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한신 소속으로 뛴다. 목표는 2년 연속 구원왕과 0점대 평균자책점이다. 그리고 더 큰 미래를 그린다. 최고의 무대 메이저리그다. 오승환은 “여기가 도전의 끝은 아니다”며 “항상 말했지만 난 더 큰 꿈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소방수 만든 포기하지 않는 열정

‘돌직구’로 한일 프로야구 구원투수 부문을 평정한 오승환은 1990년 서울 도신초에서 야구공을 처음 잡았다. 투수와 외야수를 겸하던 그는 우신중과 경기고를 거쳤다. 우신중 3학년 당시 투수로 가능성을 보였고 한서고 1학년 때 시속 143㎞의 강속구를 뿌려대 특급 기대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경기고 전학 후 팔꿈치가 아픈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외야수에 전념했다.

외야수 오승환은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였다. 졸업하던 2000년 프로구단으로부터 지명을 받지도 못했다. 고교동창 이동현(LG)이 계약금 3억2,000만원을 받고 프로 무대에 뛰어든 것과 달리 오승환은 2001년 단국대 진학을 선택, 그 해 11월 오른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았다.

오승환의 은사 강문길(64) 전 단국대 감독은 외야수가 아닌 투수 오승환을 원했다. 묵묵히 재활에만 힘쓰도록 오승환에게 “야구 경기도 보지 말라”고 주문했다. 공을 보면 다시 던지고 싶어 재활에 몰두하지 못하고 무리할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재활 훈련을 끝낸 오승환은 2003년 3학년 가을부터 마운드에 섰고, 2005년 삼성에 2차 1라운드(전체 5번)로 입단했다. 그는 “대학에 가서 재활을 거쳐 열심히 연습하다 보니 3학년 때 공을 던질 기회가 왔고, 프로야구 선수도 될 수 있었다”며 “돌이켜보면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힘겨운 시절을 떠올렸다.

마무리 투수 오승환 선수가 13일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귀국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마무리 투수 오승환 선수가 13일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귀국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돌부처’를 만든 아버지의 한마디

오승환은 어떤 상황이든 표정 변화가 없다. 위기 상황을 맞든, 팀 승리를 지켜내든 언제나 무표정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돌부처’다. 한신에 입단할 때도 일본 언론이 돌부처라는 별명을 소개하면서 오승환의 ‘포커페이스’를 화제로 삼을 정도였다.

오승환이 마운드에서 웃지 않게 된 건 아버지로부터 한 소리를 들은 이후다. 중학교 시절 야구 경기를 마친 뒤 집에 갔는데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왜 야구장에서 실실 거리며 웃고 다니냐”고 야단쳤다.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장난치던 오승환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오승환은 “그 때부터 잘 웃지 않았던 것 같다”며 “일부러 그렇게 하려는 건 아닌데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나서 ‘야구장에서는 좀 더 진지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오승환의 ‘돌직구’ 비결은

오승환의 주무기는 ‘돌직구’다. 직구가 돌처럼 묵직하다는 의미다. 시속은 150㎞를 넘나들 정도로 빠르면서도 볼 끝이 좋다. 오승환은 공을 손바닥으로 감싸지 않고 엄지와 검지, 중지 끝으로 찍어 던진다. 악력이 강하지 못하면 잡지 못하는 그립으로 공에 회전이 많이 걸린다.

오승환의 삼성 시절 동료 윤성환(33)은 “나도 악력이 좋지만 오승환은 더 세다”며 용인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악력을 측정했는데 레슬링 선수나 유도 선수보다 더 좋게 나왔다”고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오승환의 강한 악력 만들기 뒤에는 분무기가 있었다. 분무기에 물을 가득 채우고 물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뿜어낸다. 공을 쥐는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분무기 레버를 당기면서 손가락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다. 오승환은 팔꿈치 부상에 시달린 2009년부터 이 훈련을 해왔고, 일본에 진출한 뒤에도 동료들에게 훈련 방법을 공유했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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