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보가드 지음, 노태복 옮김
뿌리와이파리ㆍ464쪽ㆍ2만원
가장 밝은 곳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어두운 데스밸리까지의 여정
서정적 문체로 감성 자극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은 이제 희귀자원이다. 도시의 환한 불빛이 별빛을 추방했다. 인공위성이 찍은 밤의 지구는 빛의 그물로 덮여 해가 갈수록 어둠을 밀어낸다. 칠흑같은 밤이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느끼기란 거의 불가능해졌다.
밤의 어둠이 사라져가는 현상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별을 사랑하는 아마추어 관측자나 천문학자만이 아니다. 시인들도 그 대열에 있다. 러시아 문호 퓨슈킨은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는 사랑했다, 울창한 숲과 고독과 정적과 / 밤과 별과 달을 / 우리는 한때 / 하늘의 등불인 달에게 / 초저녁 어둠 속을 거닐며 눈물과 함께 / 비밀스런 고통의 환희를 고백했었지…/ 그러나 지금은 저 달도 / 희미한 가로등의 대용품에 불과하다“ (석영중 옮김)
푸슈킨이 ‘예브게니 오네긴’을 완성한 것은 1830년, 유럽에 가로등이 등장하기 시작한 때다. 처음엔 가스등이었다. 달빛은 그 희미한 가로등의 대용품 자리도 지키지 못했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1879년 이후 전등이 밤을 낮처럼 밝히면서 더 멀리 쫓겨났으니 말이다. 덕분에 삶은 편리해졌지만 인간은, 그리고 지구의 생물들은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이제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르고 지낼 만큼 캄캄한 밤은 낯선 것이 되었다.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는 지구의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서 깊은 밤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지구에서 가장 밝은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해 태곳적 어둠을 간직한 데스밸리까지 가는 지은이의 여정은 사라져가는 밤에 바치는 송가다. 어둠이, 밤이 얼마나 근사하고 소중한지 깨닫게 한다. 책의 처음과 끝에 인용한 웬들 베리의 시가 이 책의 메시지를 일러준다. “빛과 함께 어둠 속에 들어감은 빛을 알기 위함이다 / 어둠을 알려면 어둠에 거하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 어둠 또한 꽃피고 노래함을 알리라 / 어두운 발과 어두운 날개로 지나감을 알리라”
시적인 문체가 감성을 자극하는 이 책은 밤과 어둠과 불빛이 미치는 영향을 사회, 자연, 의학, 종교, 예술 등의 면에서 입체적으로 고찰한다. 밤을 잃어버리면 생체리듬이 깨져 몸에 해로울 뿐 아니라 예술과 사유, 나아가 우리 자신마저 잃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야간근무자들이 암과 당뇨, 심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의학적 보고는 이미 나와 있다. 자동차 불빛이 야생동물의 눈을 일시적으로 멀게 해 로드킬을 부른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책은 빛공해가 밤하늘을 더럽히는 정도를 나타내는 ‘보틀 등급’에 따라 9(가장 밝은 밤)에서 1(가장 어두운 밤)로 목차를 매겼다. 첫 장이 9장, 마지막 장이 1장이다. 라스베이거스 룩소르 카지노의 광선빔 이야기로 시작한다. 양초 400억개 이상의 빛을 하늘로 쏘아올리는 거대한 빛기둥에 이끌려 곤충과 나방들이 몰려든다. 덕분에 박쥐와 새들은 포식을 하지만 좋은 일이 아니다. 멀리 사막의 동굴과 둥지에서 날아와 만찬을 즐기고 돌아갈 때면 장거리 비행에 정작 새끼들에게 줄 먹이가 별로 남지 않기 때문이다. 빛공해가 생태계를 교란하는 예다.
지은이의 여정은 북미와 유럽에 집중돼 있다. 빛의 도시 파리와 런던에서 19세기 가스등의 낭만과 오늘의 야경을 이야기하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을 쓴 매사추세츠의 콩코드 숲에서 밤의 고요와 매력을 느끼고, 고대인의 상형문자를 간직한 뉴멕시코의 차코국립역사문화공원에서 아득한 과거의 밤을 더듬는 식으로 가는 곳마다 오감을 활짝 열어 독자를 밤의 세계로 안내한다.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 밤하늘의 추억과 배낭여행 중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맞은 밤의 경이 같은 개인적 체험과, 여러 문학 작품에서 가져온 밤에 대한 진술을 섞어가며 서정적인 책을 썼다.
많은 이들이 여기에 동행했다. 지은이는 어둠의 가치와 빛공해의 위협을 알리는 데 힘쓰는 과학자, 의사, 활동가와 작가들을 찾아갔다. 도시를 빛공해에서 구해 낭만적인 모습으로 돌려놓으려고 애쓰는 조명 설계자, 밤의 신성한 어둠을 사랑하는 성직자, 병원 응급실에서 야근하는 간호사와 밤새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 운전자, 감옥에 있는 동안 별빛이 가장 그리웠다는 사내, ‘불을 끄고 별을 켜자’며 어두운 밤하늘 지키기 운동을 하는 단체와 지역 공동체, 철따라 이동하는 야행성 조류를 여러 도시에서 구해낸 활동가 등 그가 만난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밤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전한다.
인공조명을 무조건 줄이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꼭 필요한 데만,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쓰자며 그런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도시의 조명 정책을 연구하거나 집행하는 이들이 참고하면 좋겠다.
어둠은 위험하고 빛은 안전하다는 통념을 반박하는 내용도 있다. 범죄를 예방하려면 밤에도 환한 게 좋다는 생각과 달리, 가로등을 늘렸더니 범죄가 줄었다는 보고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브리스톨 등 영국의 도시에서 자정 이후 가로등을 껐더니 범죄가 20~50% 줄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 잘 보이던 게 잘 안보이게 된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더 잘 보인다.
책을 덮으면 밤의 어둠이, 냄새가, 소리가 문득 그리워진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들이다. 촛불을 켜고 읽고 싶은 책, 자다가 너무 환한 달빛에 놀라 깨어서는 다시 펼쳐보고 싶은 책, 밤을 느끼고 싶어서 한밤중에 산책하게 만드는 책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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