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민주당 대표 공약인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면서 주민투표로 승부수를 띄웠다. 마땅한 선거 슬로건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민주당은 트위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나쁜 투표, 착한 거부’라는 구호를 내세워 대박을 쳤다. ‘나쁘다’ ‘착하다’는 이분법적인 감성 접근이 시민들의 정서를 흔들었다.
▦ 정치권에서 네이밍(namingㆍ이름짓기)은 종종 판세 흐름을 뒤바꾼다. 프레임을 자신들이 의도한 방향으로 이끄는 마법과 같은 힘을 발휘한다. 참여정부 때 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추진하자 한나라당은 ‘세금폭탄’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납부 대상이 상위 1.2%에 불과하지만 전 국민에게 부과되는 것처럼 비쳐져 집권 내내 노무현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이명박 대통령을 낳은 17대 대선은 한나라당이 내건 ‘무능한 진보’라는 한 마디로 하나마나 한 게임이 되었다.
▦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들의 이목을 끌려는 여야의 네이밍 경쟁은 치열하다. 간결 명확하고 친근하고 오랫동안 대중의 기억에 남는 이름이어야 약발이 있다. 새정치연합은 지난해 갑을관계가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을지로위원회’라는 신상품을 내놨다. ‘을을 지키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는 위원회’의 약칭이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곧바로 ‘손가위(손톱 밑 가시 뽑기 특별위원회)’로 맞섰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일 때 말한‘손톱 밑의 가시’가 인기를 얻은 데 착안한 조어다. 최근 잘 만든 네이밍 사례로 거론되는 ‘사자방’은 새정치연합 대변인 작품이다. 4대강과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가 터지자 이를 묶을 용어를 고민하다 수첩을 놓고 중얼중얼하다가 만들어냈다고 한다.
▦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논쟁이 일면서 무상이라는 단어를 바꾸자는 주장이 야당에서 나오고 있다. ‘무상’의 어감이 돈은 안내고 공짜로 혜택만 본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의무교육 기간 중 무상급식은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에 ‘의무급식’으로, 무상복지는 ‘보편복지’로 불러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 위기로 한때 복지의 가치를 표상했던 무상이란 용어가 빛을 바래는 현실이 씁쓸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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