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업체가 고객에 하자 책임 떠넘겨
A(62)씨는 지난해 7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백화점 명품관에서 570만원을 주고 여성용 명품시계를 구입했다. 명품시계를 산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구매 후 2~3주가 지나자 10분 가까이 시간의 오차가 생겼다. 판매업체에 문의하자 업체 측은 배터리로 작동하는 쿼츠 시계의 특성상 배터리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배터리를 교환해줬고, 다른 부품의 점검 및 세척 등의 조치도 해줬다. 하지만 오차는 계속해서 발생했고 올해 4월 업체 측은 급기야 시계의 핵심장치인 ‘무브먼트’ 부품을 교체했다.
그래도 달라진 건 없었다. 무브먼트를 교체한 후 4개월 동안 해당 시계는 무려 17분이나 차이가 났다. 쿼츠 시계의 정확도 평가 절차 및 정확도 등급에 관련된 규정(KS B ISO 10553)에 따르면 월 정확도 등급은 ±15s/m다. 한 달에 15초 넘게 느려지거나 빨라지면 시계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뜻이다. A씨가 구입한 시계는 한 달 평균 4분 이상 느려졌으므로 등급 기준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셈이다.
참다 못한 A씨는 결국 8월 시계에 하자가 있다면서 교환 또는 환불을 요구했다. 그러나 업체는 “해당 시계에 하자는 없고 다만 자성에 취약한 제품의 특성상 일정 정도의 오차는 불가피하다”며 “회사 정책상 소비자의 사용 잘못으로 인한 교환 및 환불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A씨는 “업체는 강력한 자성이 있는 환경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시계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지만 나는 평범한 가정주부”라며 “일상 생활을 하는데 강력한 자성에 노출된다면 제대로 된 시계라고 할 수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고가 명품시계 업체들이 하자를 소비자 책임으로 떠넘기고 교환ㆍ환불을 거부하는 사례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201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시계 관련 소비자 불만은 313건으로 이중 100만원 이상 고가 시계에 관한 내용은 61건이나 된다.
지난해 9월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서 B씨가 구입한 130만원짜리 손목시계도 일주일에 2분씩 빨리 가서 한 차례 수리를 받았지만 다시 검사해 보니 4일 만에 5분이나 빨라졌다. 제품 품질보증서에는 ‘기계식 무브먼트는 하루에 -5초에서 +15초 정도 오차를 나타낸다’고 적혀 있었다. B씨는 “매번 정확한 시계와 시간을 비교하는 일이 번거롭고 워낙 오차가 커 시계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교환을 요구했지만 사용자 책임이라며 거부당했다.
한 시계전문가는 “판매업자 측이 확인 불가능한 착용 환경 또는 배터리 문제로 돌리거나 자체 시험결과는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많다”며 “고가의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를 위해 업체들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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