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봉합 수순 밟겠지만 완전 정상화까지는 산넘어 산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를 전격 제안한 것은 숨가쁘게 전개되는 동북아 외교전에서 뒤쳐지지 않겠다는 외교 전략으로 풀이된다. 10일 중일 정상회담 개최로 외교적 고립 부담이 커진 한국이 3국 정상회담이란 우회로를 통해 한일관계 개선과 동시에 동북아 외교 주도권을 만회하려는 모양새다. 다만 일본 정치 지도자의 역사 퇴행적 발언에다 위안부 문제 등으로 골이 깊었던 한일관계가 정상화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한중일 정상회담은 2008년부터 매년 3국을 돌아가며 열렸으나 2012년 5월 이후 멈춘 상태였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권을 둘러싼 갈등과 과거사 인식 문제 등으로 중일 관계가 악화한 게 계기였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 말기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갈등이 불거졌고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 정부가 각각 들어선 이후에도 위안부 등 과거사 인식 문제로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치달았다.
지난 3월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미국 측이 적극 나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한일 정상이 대면하긴 했으나 한일 관계 개선의 실마리는 좀체 찾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조치를 요구하며 한일 정상회담을 거절해왔다.
그러나 중국이 뜻 밖에 중일 정상회담을 전격 성사시키면서 우리 정부의 계산도 복잡해진 형국이다. 중국이 실리 외교에 나선 상황에서 우리만 한일관계 개선을 외면하면 동북아 외교에서 외톨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10일 한중 정상회담 당시 “연내 한중일 3개국 외교장관 회담을 실시할 필요성에 대해 일치했다”고 발표한 것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반전의 시도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갈라 만찬에서 아베 총리와 조우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한일 국장급 협의 등의 얘기를 나눈 것도 그간의 경색된 행보에서 적극적 행보로 돌아선 신호였다.
이런 사정에 비춰 박 대통령의 3국 정상회담 제안은 당장 한일 양자간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회적 방식으로 한일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3국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동북아 외교를 선제적으로 이끄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날 제안이 극도로 경색된 한일관계에 숨통을 튼 측면이 있으나, 완전 정상화까지는 넘어야 할 고개가 많다. 당장은 연내 한중일 3국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2년 반 이상 이어진 한일 갈등을 봉합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우경화 전략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선 한국이 물러설 공간이 적다. 더군다나 중국과 일본의 영토 갈등이 또다시 재연될 경우 중국 측의 거부로 3국간 협의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초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린다 해도 한일 정상회담 개최로 이어지지 못하고 갈등이 재개될 수도 있다. 한일 정상회담 개최의 관건인 위안부 문제를 두고 한일 양국간의 인식 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도 “한일관계에선 우리보다 일본이 먼저 풀어야 할 현안이 많아 일본 측이 성의를 보이지 않는 한 단시일 내 급진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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