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방폐장의 연내 가동 전망이 흐려졌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어제 전체회의를 열어 경주 방폐장 가동 승인 여부를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한 달 뒤 다음 회의 때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구체적 논의 연기의 배경은 즉각 밝혀지지 않았지만 방폐장의 안전성 등 본질적 문제와는 무관한, 엉뚱한 문제에서 비롯한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불만을 다독이기 위한 시간 벌기인 것으로 알려져 실소를 자아냈다. 정부가 제시했던 자사고 건립 계획이 보류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모양이다. 내달 둘째 주에 열리는 다음 회의 때까지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경우 경주 방폐장 연내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국내 유일의 중ㆍ저준위 방사능 폐기물 보관시설인 경주 방폐장은 그 동안 인근에 지진 가능성이 큰 활성단층이 발달했다는 지적이나 지하수 오염 우려 등이 지적되면서 일부 안전성 논란이 제기되긴 했다. 이런 지적과 관련, 방폐장 운영주체인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시설 완공 후 네 차례나 준공을 연기해가며 지질보강 공사 등을 통해 안전성 확보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최근 원안위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2008년 9월~2014년 8월 81차례 검사 결과 기술기준 및 법령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고 밝혔다. 더욱이 앤드류 오렐 국제원자력기구(IAEA) 폐기물 및 환경안전부장이 지난달 경주 방폐장을 점검한 뒤 “중저준위 방사능 폐기물 처분 시설인데도 고준위 폐기물을 처분시설로도 무방할 정도로 높은 안전성 수준에서 건설됐다”고 밝혔다. 안전성과 관련해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막대한 돈을 들여 지어놓은 시설의 운영을 현지 주민 일부의 반발을 이유로 미루고 있는 원안위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방사능 폐기물 반입이 시작돼야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 상당수도 조속한 운용 개시를 바라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운용 지연은 걱정거리를 키운다. 현재 전국 원전의 중ㆍ저준위 폐기물 임시저장 능력은포화상태에 임박했다. 현재 한빛(영광) 원전의 경우 포화율은 95%, 고리 원전은 83%에 달해 있다. 원전 냉각계통에서 발생하는 냉각수나 세척액, 작업복과 장갑, 부품과 공구 등 중ㆍ저준위 폐기물 10만 드럼을 지하동굴에 설치된 사일로에 저장할 수 있는 경주 방폐장의 조속한 운용이 시급한 이유다.
현지 주민들은 자사고 문제와 함께 당초 정부가 방폐장 건립과 병행하기로 한 투자를 제대로 집행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이를 빌미로 방폐장 가동 자체를 늦추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정부가 하루 빨리 지역 여론을 다독여 방폐장 운용을 시작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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