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교회는 결혼과 출산이 필요할지는 몰라도, 인간의 영적 순수성을 훼손시킨다고 여겼던 것 같다. 14세기 프랑스 신학자 제르송은 “이 세상에서 육체와 영혼의 순결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하는 삶의 방식은 없다”고 했다. 한국서양사학회가 지은 서양의 가족과 성이라는 책엔 영적 순결의 전제로 육체적 순결을 중시하는 그런 인식이 성직자의 독신생활을 요구하는 신앙규범의 밑바탕이었음은 물론, 사회적으로 결혼을 기피하는 풍조까지 낳았다는 내용이 있다.
▦ 본격적인 영적 수행을 위한 조건으로 독신생활을 요구하기는 불교도 마찬가지다. 예외는 있지만, 지금도 대부분 종파에선 출가(出家)를 하면 당연히 독신수행은 의무다. 아이작 뉴턴이나 베토벤, 고흐나 노벨처럼 자의든 타의든 독신으로 살았던 탁월한 위인들에게도 결혼과 출산은 의무가 아닌, 필요에 불과했는지 모른다. 결혼은 했지만 동성애적 성향을 나타냈던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남자는 지쳐서 결혼하고, 여자는 호기심으로 결혼하지만, 둘 다 실망한다”고 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대부분 문화권에선 여전히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독신을 비정상적 상태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번식에 대한 생물학적 본능이 암묵적 사회규범으로 정착한 것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도 최근 독신자가구(독거노인가구 등 포함)가 전체의 25%에 이를 정도로 급증하고, ‘싱글족’이란 말이 흔히 쓰이지만 비(非)혼자들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 게다가 베이비붐 세대 이후 출산율 하락이 경제 저성장 등의 주요 원인으로 부각되면서 사회정책 차원에서도 독신은 타개해야 할 부정적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 결혼과 출산 장려가 주요 정책목표로 부상하면서 독신자보다 유자녀 결혼가구를 우선하는 지원제도도 다양하게 시행되고 있다. 당장 무상보육이나 다인가족 소득공제, 출산장려금제도 등만 해도 독신자들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결혼ㆍ출산 지원책인 셈이다. 게다가 각종 연금 및 보험의 배우자 우대 및 배려제도가 적용되는 것까지 감안하면 독신자들로서는 오히려 사회적 차별이 억울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뜬금없이 싱글세(독신자세)를 매긴다는 얘기가 불거져 나와 온 나라가 시끄럽다. 공연한 소리로 독신자들의 염장만 지른 셈이 됐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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