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은행권 가계 대출
7조 가까이 늘어 역대 최대 폭
예금 금리 2% 초반에 잔액 급감
MMF 60조원 돌파 '쩐의 이동'
인천지점 개설 기념으로 이달 초 연리 3.2% 정기예금 특판 상품을 내놓았던 SBI저축은행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700명 넘는 고객 때문에 한때 업무가 마비되는 소동을 겪었다. 삼성증권이 최근 특판 출시한 연리 4.0% 환매조건부채권(RP)에는 한달 동안 400억원 넘는 자금이 밀려들었다. 금융상품 시장은 냉랭한데 특판 시장만큼은 뜨거운, 저금리 시대의 일상화된 풍경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계기로 자금시장이 급속히 부동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 2%대 초반으로 금리가 떨어진 정기예금의 잔고는 급격히 줄고, 언제든 갈아탈 수 있는 단기운용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의 수신액은 급증하고 있다 반면 저금리에 정부의 부동산시장 부양책까지 맞물리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위시한 가계대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저금리 발 돈의 이동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만기 2년 미만 정기 예ㆍ적금의 9월 잔액은 876조2,826억원으로 한 달 새 0.7%(6조283억원) 줄었다. 한은이 15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8월(-0.4%)보다 하락세가 가팔라진 것으로, 2003년 10월(-1.4%) 이래 11년 만에 최대 감소폭이다. 지난달 한은 기준금리가 한 차례 더 인하된 만큼 예ㆍ적금 자금 이탈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반면 MMF 잔액은 9월 61조4,520억원으로 전달보다 4,733억원(0.7%) 증가하며 4개월째 증가세를 이어갔다. 올해 1월과 비교하면 잔액이 26.8%(12조9,692억원) 늘어났다. 2011년 이래 월 잔액이 50조원을 크게 넘지 않았던 MMF는 지난 8월 잔액이 전달보다 10조원 이상 급증하며 60조원을 돌파하는 등 급속히 자금을 끌어들이는 추세다. 단기부동자금의 또다른 대표 경유지인 수시입출식예금과 요구불예금의 9월 잔액 또한 한 달 새 각각 7조2,548억원, 3461억원 늘었다.
반면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10월 한 달 동안 6조9,000억원 늘어 역대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같은 기간 6조원이 늘면서 최대 증가액 기록을 동반 경신한 주택담보대출이 증가세를 주도했다. 지난달 말 현재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547조4,000억원, 이중 주택담보대출은 507조7,000억원에 달한다. 한승철 한은 금융시장팀 차장은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6년 6개월 만에 최고치인 1만900가구를 기록하는 등 주택거래가 호조를 보인데다 대출금리가 낮아지면서 가계대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저금리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 가속화될 공산이 크다. 임병익 금융투자협회 조사연구실장은 “금융위기 이후 신중해진 자금들이 획기적인 투자처를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2008년 10월 이래 지속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로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진 상황”이라며 “현금통화, 단기저축성예금으로 돈이 흘러 들며 자금운용이 단기화되는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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