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ㆍ생명과학기업 경쟁적 판매
시장 규모 꾸준히 성장 추세, 작년 1조8000억원 육박
오남용 땐 되레 건강 헤쳐
허가받은 제품인지 확인부터
지난달 경기 안양시의 한 커피전문점. 중년 여성이 “어디가 불편하냐”고 묻자 동석한 60대 가량의 남성이 “피곤이 안 풀린다”고 했다. 여성은 “그냥 두면 망막까지 손상된다”며 작은 병과 책자를 꺼냈다. 간세포를 재생시키고 황반변성까지 막아준다는 건강기능식품(이하 건기식)이다. 남성이 썩 내키지 않아 하자 여성은 “식물 추출물을 알약 형태로 뭉쳐놓은 건데, 먹으면 간 기능이 복구된다”고 설득했다. 남성이 마지못해 “1주일치만 줘보라”고 하자, 여성은 “한 달 이상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며 다량 구매를 권했다.
이 여성은 글로벌 헬스케어기업의 영양상담사다. 몇 주간 제품 교육을 받은 게 전부인데 건강상태를 진단하고 병을 예측까지 한다. 전문가들은 어불성설이라고 입을 모은다. 제약사나 생명과학기업들이 너도나도 건기식 판매 경쟁에 나서면서 국내 건기식 시장은 꾸준히 확대되는 추세다. 2009년 약 1조1,600억원에서 지난해 1조7,920억원 규모로 올라섰다. 그 결과 먹지 않아도 될 사람까지 건기식에 매달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식물 추출물은 가장 흔한 건기식 성분 중 하나다. 육식 위주의 서양인은 식물성 성분을 별도로 섭취할 필요가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은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간 같은 장기가 제 기능을 하려면 식물성 비타민이나 미네랄에 의존할 게 아니라 열량을 내는 영양성분을 다양하게 섭취해야 한다. 일부 식물성 성분이 망막질환 발병을 좌우한다는 것도 근거가 희박하다”고 말했다.
식물 추출물 외에 오메가3 지방산, 루테인, 글루코사민, 비타민 등도 흔히 팔린다. EPA, DHA 같은 오메가3 지방산은 생선에 많은데, 이걸 건기식으로 먹으면서 심뇌혈관질환 예방을 기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실제로 부정맥이나 심근경색을 앓았던 사람이 꾸준히 먹으면 재발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고는 학계에 보고됐다. 하지만 박진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비만이나 고지혈증 등 심장질환 위험요인이 있는데 생선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은 오메가3 지방산을 건기식 형태로 먹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지만, 1주일에 한두 번 이상 생선을 먹는 사람에게 추가 섭취는 도움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어른 선물용으로 선호도가 높은 글루코사민은 무릎 관절염의 진행을 늦추거나 연골 재생을 돕는다. 소염진통제에 비해 부작용이 없고 관절 구조 개선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효과는 저렴한 염화글루코사민에선 나타나지 않았고, 비싼 황산글루코사민에서도 일부 입증됐다. 박진호 교수는 “글루코사민 효과는 대부분 3개월 이내에 나타나기 때문에 그 이상 먹어도 변화가 없으면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루코사민이 무릎이 아닌 허리 통증이나 골다공증, 손가락 관절염 등에도 좋다는 광고는 의학적 근거가 없다.
망막질환인 황반변성의 진행을 일부 늦춘다고 알려진 루테인은 요즘엔 망막질환이 없는 사람까지 흔히 먹는 추세다. 하지만 일반 사람의 눈 건강엔 별 효과가 없고, 오히려 흡연자가 루테인을 계속 먹을 경우 폐암 발생이 증가했다는 연구가 있다.
흔한 건기식으로 비타민 빼놓을 수 없다. 전문의들은 그러나 가급적 먹지 않는 걸 권장한다. 편식하지 않고 충분히 식사하는데도 복용하면 영양과잉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성분이 합쳐진 종합비타민제를 18년 동안 꾸준히 복용한 50, 60대 여성을 조사했더니 조기사망 위험이 높았다. 특정 성분의 비타민제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 필요량의 수~수십배 용량이라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비타민E(토코페롤)는 남용하면 심혈관질환과 전립선암을, 비타민A는 골다공증에 의한 골절과 소화기계 암 발병 확률을 높인다고 알려졌다. 또 비타민C 복용으로 면역력 증가, 심뇌혈관질환이나 암 예방, 노화 방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연구가 다수 나왔다. 베타카로틴을 비롯한 항산화제 과다 복용도 건강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폐암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건기식을 선택할 때는 무엇보다 ‘몸에 좋다니까 괜찮겠지’하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어떤 부분을 개선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에 대해 허가 받은 제품인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고 전문의들은 강조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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