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대 1로 앞서던 6회 2사 후 선발투수 로마노가 내려가고 김경태, 김원형, 이영욱, 윤길현이 차례로 마운드에서 오르더니 7회 1점, 9회초 5점을 추가해 14대 3으로 앞섰다. 9회 말 2사. 윤길현 대신 가득염이 등판하자 상대팀 벤치는 경악했다. 비(非)매너 야구 사례로 회자되는 2007년 6월 30일 프로야구 SK와 현대 11차전이다. 경기 후 “시체에 매질한 것”이라는 현대 측 항변에 김성근 당시 SK감독은 “이전에 얼마나 많이 역전패했나. 전력투구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 해 숱한 논란을 불렀던 SK는 전년도 6위에서 정규리그 1위, 첫 한국시리즈 우승 위업을 이뤘다.
▦ 야구계나 팬들 사이에 김 감독만큼 호불호(好不好)가 엇갈리는 인물은 없다. 인생역정이 묻어나는 어록이 가슴을 파고 드는 반면에 ‘구설수’ 일지를 작성하는 안티팬도 있다. 야신(野神) 못지 않게 냉혹한 승부사라는 말이 붙는 것도 경기운영에 대한 논란이 많기 때문이다. 6차례의 경질, 특히 3차례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린 SK에서 리그 중 경질된 것도 구단과 타협하지 않는 강골과 집요한 승리 철학에 기인한 바가 크다. 야신은 “구단들이 ‘자기들이 추구하는 야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다”고 했다.
▦ 아무리 이기는 야구가 좋다 해도 이미지를 먹고 사는 대기업 구단으로서는 홈 팬들의 원성에도 ‘공공의 적’은 면해야겠다는 심정이 앞섰을 것이다. ‘의리’의 한화가 ‘덕장’ 김인식 감독을 경질한 뒤 꼴찌를 전전하다 결국 야신을 영입했을 때 실험적이라 생각했다. 위험부담보다는 계속된 밑바닥 성적에도 구장을 찾는 ‘보살 팬’의 승리에 대한 갈구를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삼성야구는 돈으로 우승을 산다 해서 한때 ‘돈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전인미답의 정규리그, 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에 도전하는 지금의 삼성야구는 ‘돈질’과 거리가 멀다. 다른 팀에 비해 대단한 투수, 타자가 즐비한 것도 아니다. 유중일 삼성감독은 “모든 것을 코치들에게 맡기니 되더라”며 스스로를 복장(福將)이라 한다. 청와대가 야구의 리더십을 배우고자 했다면 유 감독을 부르는 게 시대에 맞는 게 아닌가 싶다. 마키아벨리 시대라면 모를까 ‘세상 모든 손가락질을 이겨내라’는 야신의 가르침이 정치에 접목될 건 아닌 것 같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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