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수출 합친 금액보다 中 수출 많아 타결 자체 큰 의미
"농수산물 60% 관세철폐 제외 불구 남은 빗장 풀리는 건 시간 문제"
경제전문가와 학계에서는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며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정부가 정치적 ‘퍼포먼스’를 의식해 낮은 수준으로 서둘러 FTA를 타결함으로써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중국과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교류도 워낙 많아 FTA 발효 이후 상황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최종 협정문에 서명할 때까지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중 FTA의 세부적 내용보다는 우선 타결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지금도 중국으로의 수출규모가 FTA가 이미 체결된 미국과 유럽연합(EU) 수출을 합한 금액보다도 많기 때문에 한중 FTA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한미 FTA와 한ㆍ유럽연합 FTA를 훨씬 능가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하태형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두 나라가 서로 민감한 부문은 제외하고 타결했지만 2개 시장이 통합되는 첫 번째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발효 직후부터 양국간 교역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중 FTA는 양국의 경제적 이슈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전체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FTA를 계기로 중국을 배수진으로 삼으면 한미관계나 남북관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최소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가 농수축산물 수입액의 60%를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시킨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지적이 많았다. 양승룡 고려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개방 수준으로 보자면 농업분야 협상은 정부가 잘한 것이지만 한번 시장이 열리면 남은 빗장이 풀리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에 관세가 철폐되는 20년 이후까지 시간을 벌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진단했다. 양 교수는 특히 “원료 농산물은 낮은 수준으로 개방이 됐지만, 농산물을 원료로 한 가공식품은 상대적으로 많이 개방됐기 때문에 국내 농가의 피해를 좀더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중 FTA를 계기로 경쟁력이 취약한 농업 분야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4억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중국 부유층을 겨냥해 친환경적인 고부가가치 제품을 공급한다면 FTA가 농가에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중 FTA가 중국시장에서 제조업체들의 경쟁력 확보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하며 정부에 후한 점수를 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실제로 한중 FTA로 철강과 석유화학 등 주력 제품 및 패션과 영ㆍ유아용품, 스포츠ㆍ레저용품, 건강ㆍ웰빙제품, 고급 생활가전 등의 제품이 중국 내 경쟁국인 일본이나 타이완, 미국, 독일보다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정부의 협상 결과 중에서 긍정적 측면만 부각돼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제현정 국제무역연구원 통상연구실 연구위원은 “우리 입장에서 민감한 공산품이 많지만 품목별로 양허 여부가 공개되지 않아 제조업에 미칠 전체적인 영향은 예측하기 힘들다”며 “당장 관세철폐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중국제품은 가격경쟁력이 월등하기 때문에 국내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앞으로 점점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이 이미 상당부분 진행돼 FTA로 인한 실질적 이득이 크지 않은 반면, 중국 기업의 우리나라 진출로 국내 중소기업들은 타격이 클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하태형 원장은 “일부 중소기업 제품을 초민감 품목으로 정했지만, 전방위적으로 중국 제품이 밀려오면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중 FTA로 돌아오는 이익을 중소기업 지원에 투입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도 “관세 철폐로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거둬들일 이득에만 심취해서는 안 되고, 중국 기업의 국내시장 진출로 입게 될 중소기업들의 피해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성급한 타결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차이나 머니가 지분을 절반 이상 갖고 있는 국내 콘텐츠 기업이 중국에서 한류사업을 할 경우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갈지 확신하기 어렵다”며 “이처럼 서비스시장 개방이 어느 쪽에 유리할 지 예상하기 힘든 상황에서 양국이 완벽하게 합의도 하지 않은 채 ‘실질적 타결’이라는 용어까지 쓰며 협상을 끝낸 것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한중 FTA가 중국 의존도를 더욱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대체시장 확보 및 산업 체질개선 등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중국이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지만 과도한 의존은 위기를 초래하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제현정 위원은 “FTA는 시장 접근성을 높여 양국간 교역과 투자를 증대시키는 ‘윈-윈’ 전략이 기본”이라며 “품목별 영향 분석을 좀더 명확히 해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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