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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낯선 풍경 속 다른 얼굴, 같은 미소

입력
2014.11.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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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어요. 왼쪽날개를 채워줘야 하는데 얘가 차에서 나오지 않아요. 도착해 내리자마자 팔 하나가 없는 사람을 보고 놀랐거든요.”

‘2014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이 하루 저녁 공연을 공동주최했고 근 두 달 여 출연자와 스태프 및 관계자 130여명을 동원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런데 마지막 순서에 어린아이들의 재주를 보여주며 풋풋하고 여리지만 미래를 품었기에 더 강한 메시지로 힘을 실으려고 계획했던 이 무대, 유독 수줍음 많아 툭하면 누이들 치마폭으로 숨어버리던 7살짜리 꼬마가 하필 오늘 “무섭다”며 꼼짝할 생각을 않는다. 이러니 속이 까맣게 타 들어가는 것은 그 아비뿐, 정신 없이 돌아가는 공연준비에 바삐 오가는 사람 누구 하나 거들 수도 없고, 달래볼 엄두도 내지 못한다.

사람 누구나 그렇듯 당장 내 앞을 막아서는 현실이 아닌 것에는 크게 관심 두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장애인용 리프트는 그저 신기한 구경거리였을 뿐 계단이 높거나 휠체어도로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으니 나와 관계없는 것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의 일이 내 것이 되었다. 긴 투병 끝에 휠체어를 타게 된 내 가족이 세상과 만나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고 매우 큰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주머니 사정에 상관없이 그나마 시설을 갖춘 백화점으로 산책을 나가야 하고 차창 밖 흐드러진 꽃 속에 얼굴을 묻거나 거뭇한 흙을 밟는 것은 사치가 되었다.

그래서 더 욕심부렸다.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을지 모르기에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다. 평생 단 한번 기억으로 가슴에 담아둘 것이라면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같은 마음이었던 연출과 스태프들이 특수효과까지 동원해 자그마한 야외무대와 객석에 엄청난 양의 종이 꽃을 눈처럼 뿌리고, 주최측의 배려로 기념품도 주었으니 “개막식보다 더 좋았어요”라는 관객의 칭찬은 듣지 못했으면 서운할뻔했다. 결국 수줍어하던 7살 사내녀석과 당차게 무대를 누비던 6살 소녀가 좌우 양 날개를 채워주고 팔 하나, 다리 하나 없는 아저씨들과 어울려 기념사진을 찍으며 낯선 풍경을 마무리했으니 적어도 그날 한자리에 모였던 다른 얼굴, 만면에 피어 올랐던 같은 미소는 두고두고 꺼내어 볼 추억으로 마음에 남았을 터.

오래 전 영국에서 열린 행사에 초대받아 갔을 때였다. 전동휠체어를 탄 남성주위로 사람들이 가득 모여 인사를 나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몸이 불편해도 정치하는데 지장 없으니 역시 선진국은 다르다’ 생각하며 무심히 그들을 지나쳤다. 분명 국내 행사를 준비하며 그에 관해 자료를 찾아보았고 심지어 공연 후 편치 않은 마음으로 객석을 빠져 나오기도 했으면서 그 많은 사람들이 환대하는 그가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일 것이라고 의심 없이 믿어버린 내 편견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었다.

셀레스트 댄드커, 춤을 추던 그가 무대 위 사고로 양 다리를 잃었다. 나는 그가 견뎌야 했을 시간, 직시하고 인정해야만 했을 현실을 감히 떠올릴 수도, 이해하는 척도 할 수 없다. 내가 수잔 보일이었다면 쏟아지는 눈물과 환호에 감사하기보다 이제서야 달라진 사람들을 조롱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댄드커는 영국 무용계의 VIP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보일은 수백억 자산가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 무대에 선 뇌성마비 장애인 무용수를 몇 차례 봤지만 로비에서는 만나지 못했다. 우월을 추종하고 열등을 수치로 몰아가는 이 나라에서 그는 감히 무대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듣는 참 궁색한 말, “아, 금메달보다 더 값진 동메달이에요.” 시상대에 올랐지만 곧 무시당할 메달리스트들의 표정에도 죄스러운 기색이 역력한데 하물며 꽁꽁 숨겨두고 싶은 장애인의 것이라면 상상을 넘어선다 해도 그 무거운 역경에 주목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7살 아이의 눈에 비친 낯섦이 마흔 살 마음에 미안함 섞인 불편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이 불편이 버거운가? 그러면 벌금 때문이 아니라 나보다 조금 더 불편한 사람을 위해 장애인 주차구역을 비워 둬보자. 이게 되면 계단도 조금 낮출 수 있을 테니.

김신아 아트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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