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투쟁 등 여러 사건들 참고
여성의 삶과 공동체 유대감 그려 내
계단 좁은 공간에서 밥 먹는 것 등
장면 대부분 실제로 있는 일 재현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며 산화한 지 딱 44년째 되는 13일 뜻 깊은 영화 한 편이 개봉한다. 대형마트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이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린 ‘카트’는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사실상 국내 최초의 상업영화다. 2007년 이랜드 홈에버 투쟁을 주된 모티프로 하고 있지만 영화의 핵심은 노동자의 투쟁이 아니라 여성들의 연대다. 여성의 눈으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과 여성공동체의 유대감을 그린다. 여성들이 만든 영화라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ㆍ2007)과 ‘건축학개론’(2012) 등으로 호흡을 맞춘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와 김균희 프로듀서,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2009)의 부지영 감독이 그 주인공들이다. 세 여성 영화인을 만나 ‘카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_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상업영화로 기획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심재명=“6년 전쯤 ‘카트’에 나오는 것과 유사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는 것을 보면서 그런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 자체가 일단 쉽지 않은 것이어서 내부적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고민의 시간도 많았고 휴지기도 있었다.”
_어떤 점에서 상업영화로 가능성이 있어 보였나.
▦심재명=“가능성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초저예산 독립영화 방식으로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볼 수 없지 않나. 이 얘기를 세상에 던질 때 보다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통해 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미나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상업영화로 만들었다.”
_김 PD는 처음에 제안을 받고 바로 수락했나.
▦김균희=“‘우생순’ 촬영을 마친 직후 제안을 받았다. 그 영화처럼 이 영화도 여성 캐릭터가 많이 나와 못하겠다고 했다. ‘건축학개론’을 같이 한 뒤 시나리오를 다시 받았는데 그때는 한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소재로 생각했다.”
_부지영 감독을 적임자로 생각한 이유는.
▦심재명=“지금은 없어진 중앙극장에서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봤는데 미덕도 있고 아쉬움도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카트’를 연출할 감독을 찾다가 부 감독의 단편 ‘니마’와 ‘산정호수의 맛’을 찾아서 봤다. 후자는 대형마트 노동자의 사랑 이야기고 전자는 이주여성 노동자의 이야기여서 여성 영화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 연락했다.”
_영화 속 마트를 영화 현장으로 치환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장 스태프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고 결혼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겪는 여성 스태프도 많다. 여성 감독에 대한 차별도 있을테고.
▦심재명=“영화계 여성 노동자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낮은 출산율이다. 내 주위만 봐도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여성 영화인을 만나기 어렵다. 비혼율도 높다. 그런데 부 감독은 아이가 둘이어서 놀랐다.”
▦부지영=“여성 감독이라고 딱히 차별 받는 일은 없지만 결혼(남편이 ‘카트’의 김우형 촬영감독이다)하고 애가 있어서 술자리에 나를 잘 불러주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웃음).”
▦심재명=“투자사나 배급사는 여성 감독이 장르영화나 경쟁력 있는 상업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순전히 이전의 수치들로만 말하는 거다. ‘제보자’의 임순례 감독 등 여성 감독들은 굉장히 진취적이라고 생각한다.”
_영화의 구체적인 모델이 되는 실제 인물이 있나.
▦김균희=“특정 인물을 모델로 캐릭터를 만든 건 전혀 없다. 모두 허구의 인물이다.”
▦부지영=“이랜드 투쟁 외에도 여러 사건을 참고해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이는 것은 대부분 실제로 자료 조사를 통해 재현했다.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라는 문구나 계단 아래 비좁은 공간에서 밥을 먹는 장면도 모두 실제 존재하는 걸 영화적인 공간으로 옮겨왔다.”
_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마트가 실제 있는 공간처럼 보인다.
▦김균희=“무빙워크가 있는 미분양 건물을 많이 알아봤는데 쇼핑몰이나 마트뿐이고 비용이 많이 들더라.”
▦심재명=“이런 소재의 영화인데 누가 마트를 빌려주겠나. 그래서 건물의 골격만 빌린 뒤 그 안을 다 채워 넣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확장하고 마트의 외관도 다시 지었다. 700평 규모의 건물을 1,400평 정도로 보이게 했다. 세트 제작비만 3억원쯤 들었다. ‘카트’는 컴퓨터그래픽 블록버스터다(웃음)”
_제작자, 감독, 프로듀서가 모두 여성이라 좋은 점이 있었을 것 같다.
▦심재명=“동성이라서 특별히 좋은 건 없다. 다만 육아나 출산 등 영화 속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섬세한 공감과 이해가 있었다. 남자는 습득해서 알지만 여자는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있지 않나.”
▦부지영=“김 PD는 아이가 없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영화를 하는 것에 대한 배려나 공감이 크다. 그런 느낌을 받으며 일하는 것이 좋았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연다혜 인턴기자(경희대 언론정보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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