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정치권 일각에서 개헌론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개헌론은 과거 정부들에서 나타났던 개헌론과 대동소이한 것 같다. 대통령 임기 4년 중임제, 이원집정제, 내각책임제 따위로 개헌하자는 것이다. 과연 어떤 권력구조가 대한민국의 장기적 발전에 도움이 될지에 관해서는 이론적, 정책적으로 논란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권의 개헌론은 거의 대부분 정략적 고려에서, 권력을 잡으려는 정파적 고려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런 정략적 개헌론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국회에서 위원회를 만들어 보고서를 낸 정도에 머물렀다.
정략적 개헌 논의는 중단돼야 한다. 경제 살리기와 절박한 민생문제를 앞에 두고 하는 이런 개헌논의는 백해무익하다. 하지만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혁신의 차원에서 제기되는 개헌논의는 막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려돼야 한다. 국가혁신을 위한 개헌은 정권을 초월하고 여야를 초월해 전국민적이고 전체 민족적 이해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백년대계를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두말할 필요없이 남북통일일 것이다. 마침 박근혜 정부가 통일준비위원회를 설치해 통일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통일준비를 위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과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올바른 통일 방법론의 설정, 통일한국 발전모델의 정립은 모든 통일 논의에 우선하는 최우선의 중대한 과제일 것이다.
경제력 격차가 엄청나게 크고 정치체제와 경제체제가 크게 이질적인 남북한간의 통일은 세계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난제일 것이다. 이런 난제를 푸는 남북통일은 점진적인 통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준비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닥치는 급격한 통일은 경제ㆍ사회적으로 대한민국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점진적 남북통일을 상정할 경우 통일 준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제도적 정비는 아마도 지방분권 개헌이 아닐까 한다.
남북한 간의 끔찍할 정도의 경제력 격차와 엄청난 사회ㆍ문화적 이질성이란 초기 조건에서 남한이 주도하는 통일이 이뤄질 경우 통일한국은 연방국가가 될 필요가 있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독 지역들이 서독의 연방에 가입한 것처럼 한국 통일 과정에서도 북한 지역들이 통일한국의 연방에 가입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법륜 스님의 저서 새로운 100년에서 제시된 것처럼 통일한국이 예컨대 ‘8도 연방제’를 실시할 경우 하나의 연방정부 밑에 남한의 5도 지방정부들과 북한의 3도 지방정부들이 입법, 행정, 재정 면에서 충분한 자치권을 가지는 연방국가 통일한국(United States of Korea)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독일 같은 연방국가에서 실시하는 재정 연방주의(fiscal federalism)를 통해 북한지역의 낙후 지방정부들을 연방정부가 재정적으로 지원해 북한을 재건하고 남북한간의 격차를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경제ㆍ사회적 통합이 이뤄지는 통일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앙집권국가인 대한민국을 지방분권국가로 개조해야 한다. 중앙집권-수도권 일극발전 체제를 지방분권-다극발전체제로 국가경영방식을 혁신해야 한다. 장차 연방국가 통일한국을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경영 패러다임을 실험하고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분권 개헌이 필수적이다.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이다’는 조항을 헌법 제1조에 포함시키고 지방정부에 입법, 행정, 재정상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지방분권 개헌을 해야 한다. 국방과 외교, 거시경제정책, 복지정책, 환경정책 등은 중앙정부가 맡고 산업정책, 노동정책, 교육정책, 지역계획 등은 지방정부가 맡는 권한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작업과 함께 남한에서 지방분권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통일준비의 가장 중요한 선행과정일 것이다. 따라서 정권과 여야와 진보와 보수를 초월해 통일한국을 준비하는 지방분권 개헌이 지금 일정에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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