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박근혜 대통령이 강원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를 직접 찾아 현장을 점검한 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준비가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올림픽 개ㆍ폐막식 장소 변경과 예산 삭감으로 정부와 강원도가 서로 얼굴을 붉히는 험악한 상황이 연출됐다.
빚더미에 오를 것이 뻔한 ‘불필요한’경기장 건설을 막으려는 정부의 고민과 그럴듯하게 평창을 포장해 전세계에 내보이려는 강원도의 이해가 충돌해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의 속은 까맣게 타 들어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약속한 사항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데다, 하릴없이 시간만 흘러 보낸다는 비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개ㆍ폐회식장은 올림픽 개최지인 평창 횡계리에 짓기로 최종 결론이 났으나, 메인스타디움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초 평창조직위가 IOC에 밝힌 개ㆍ폐회식장은 알펜시아 내 스키점프 관중석을 증축해 사용하겠다는 안이었다. 그러나 ‘장소가 비좁다’는 IOC 지적에 따라 스타디움을 짓기로 방향을 틀었다.
정부와 강원도, 그리고 평창조직위는 4만석 규모의 메인스타디움을 신설하되, 올림픽이 끝난 뒤 1만5,000석만 남기고 철거하는데 합의했다. 그런데 강원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메인스타디움 주변에 상업시설이 들어갈 ‘올림픽플라자’를 짓겠다며 정부에 1,000억원 넘는 예산을 요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상주 인구 4,000여명에 불과한 횡계리의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 요구”라며 싸늘한 반응이다. 올림픽을 계기로 국비 지원을 단단히 받아내려는 강원도의 목소리는 큰 반면, 천문학적인 나랏돈이 투입되는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실 역대 동계올림픽은 1984년 사라예보(옛 유고)대회를 제외하면 선진국들의 전유물이었다. 동계 스포츠 자체가 고가의 장비와 비용이 드는 경기가 많아 중ㆍ후진국에선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2014년 소치대회의 경우 푸틴 대통령이 ‘강한 러시아’를 선전하려는 정치적 목적까지 더해져 동ㆍ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사상 최대인 500억 달러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다. 당연히 큰 폭의 적자가 불가피했다. 1998년 일본 나가노와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대회 또한 적자 올림픽의 상징처럼 회자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대회가 경제성을 무시한 채 치러진 것은 아니다.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는 가장 성공적인 동계대회로 평가된다. 이 대회의 성공요인은 무엇보다 경기장 건설을 최소화했다는데 있다. 릴레함메르의 인구는 평창군과 비슷한 3만여 명이지만 올림픽플라자 같은 대규모 상업시설을 찾아볼 수 없다. 릴레함메르에 현재 남아있는 올림픽 유산은 스키 점프대가 유일하다. 성화대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스키 점프대 인근에 몸을 숨기고 있다. 쇼트트랙 경기장은 핸드볼과 배드민턴 경기장으로 용도를 바꿔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선수촌과 미디어 시설은 아예 컨테이너 등 가건물로 지어 대회 직후 철거됐다.
올림픽이 끝난 지 20년. 릴레함메르에 남은 것은 수천억원 빚더미가 아니라 알뜰 올림픽 개최국이자 세계적인 동계스포츠의 명소라는 이름이다. 평창올림픽도 릴레함메르를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개ㆍ폐회식장을 조립식으로 지으면 어떨까. 앞선 사례도 있다.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에서 선보였던 초대형 복합시설 ‘O2아레나’는 특정 종목만을 위한 경기장이 아니었다. 태권도ㆍ유도ㆍ복싱 종목을 바꿔가며 치를 수 있게 내부를 조립식으로 꾸몄고 연말이면 테니스 경기장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하계 올림픽을 첫 흑자대회로 이끈 1984년 LA올림픽 조직위원장 피터 유베로스는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규모 경기장이 아니라 경기장에 몇 대의 TV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느냐다”라고 말했다. 그는 LA시의 재정지원을 1달러도 받지 않고 치른 올림픽에서 2억2,500만달러를 벌어 들였다. 평창은 올림픽이 끝난 뒤 어떻게 기억될 지 궁금하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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