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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히 도입된 누리과정, 사회적 합의 얻은 무상급식 흔들어

입력
2014.11.0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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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보육, 보수정권서 성장한 정책… 예산 빌미 진보 대표정책 훼손 우려

무상급식과 누리과정(만 3~5세 아동 보육비 지원사업)은 소득 구분 없이 모든 계층에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적 복지 정책의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두 정책이 걸어온 길은 전연 딴판이다. 무상급식의 경우 사회적 합의를 거친 복지정책인 반면 무상보육은 사회적 합의 과정 없이 미봉된 채로 진행돼 온 측면이 크다. 최근 무상복지의 최대 현안을 둘러싼 여야의 진영 대결도 이러한 관점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무상급식은 진보, 무상보육은 보수의 정책으로 진화

여야 정치권이 두 정책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다르다. 새누리당은 예산 부족 문제가 심각한 만큼 교육복지정책을 재구성하자는 입장이지만 내심은 진보의 대표적 정책인 무상급식 예산을 줄여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누리과정에 보태자는 데 있다. 세수부족을 핑계로 진보진영의 대표적 정책을 흔들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대선공약 파기”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무상급식 예산은 끝까지 챙기겠다는 심산이다.

누리과정은 실제 보수 정권에서 성장한 복지정책으로 볼 수 있다. 누리과정의 경우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1년 소득 하위 70%인 만 5세 이하 아동의 보육비를 지원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2012년 3월부터 소득 구분 없앤 채 지원을 확대했다. 박 대통령도 당시 대선 과정에서 “보육은 국가의 책임”이라며 ‘국가책임무상보육제도’ 공약을 통해 누리과정 확대를 약속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9월 발표한 새해 예산안에서 누리과정 예산은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내년 누리과정 지원에 들어가는 3조9,691억원 전액을 지방교육재정으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반면 무상급식 정책은 진보진영이 시작이다. 2002년 16대, 2007년 17대 대선에서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 후보는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일컫는 ‘3무(無)’ 정책을 대표 공약으로 앞세우면서 사회적 논의의 토대를 닦았다. 무상급식은 야권이 2010년 6ㆍ2지방선거에서 공통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사회적 의제로 본격 부각했고, ‘친환경 무상급식 시행’을 앞세운 진보 성향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서 국민적 동의를 얻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선거 이후 2010년 말까지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88.6%인 203곳(당시 시행 중인 곳 포함)에서 초ㆍ중ㆍ고교 중 일부라도 2011년부터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계획할 정도로 사회적 공감대도 확산됐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7일 새해 예산안을 심사하는 국회 교문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7일 새해 예산안을 심사하는 국회 교문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사회적 합의라는 기준에서 판단해야

무상복지 공방이 여야 진영 대결로 흐르면서 난데없이 ‘청소년 밥그릇이냐 유아 젖병이냐’는 논쟁도 격화하고 있다. 급식은 청소년 복지인 반면 보육은 유아 복지라는 점에서다. 이러다 자칫 중고생을 자녀로 둔 40, 50대와 ‘유모차 부대’의 세대간 대결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무상급식의 경우 오랫 동안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 도입된 반면 무상보육은 보수정권이 조급하게 만든 정책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예산을 핑계로 진보의 복지정책 흔들기에 나선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시ㆍ도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 반발에 홍준표 경남지사와 남경필 경기지사 등 보수 진영이 ‘무상급식 예산 불가’로 맞불을 놓는 것도 진보진영의 무상복지 정책에 대한 총공세라는 관측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책임무상보육제도’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해 놓고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 대신 시ㆍ도교육청으로 책임을 떠넘겼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다. 정부는 지난 2012년 장미 빛 경제전망을 근거로 시도교육청의 예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만이 늘 것이라며 누리교육 예산을 떠넘겼다. 하지만 새해 예산안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1조3,000억원 삭감됐다. 2013년 국세수입이 8조5,000억원 덜 걷힌 것을 정산하면서 내년 예산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것이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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