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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 줄, 그림 한 장… 상상한 만큼 보일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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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 줄, 그림 한 장… 상상한 만큼 보일꺼야

입력
2014.11.0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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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여름의 규칙> 일러스트. 도판제공 풀빛출판사
그림책 <여름의 규칙> 일러스트. 도판제공 풀빛출판사

여름의 규칙

숀 탠 글ㆍ그림, 김경연 옮김

풀빛ㆍ48쪽ㆍ1만5,000원

거대한 붉은 토끼가 들어앉은 담벼락 구석에 두 아이가 눈에 띌까 두려운 듯 웅크리고 있다. 반대편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두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 담 너머로 보이는 칙칙한 건물은 공장 같다. 아이들 앞의 빨래줄에는 빨간 양말 한 짝이 걸려 있다. 수수께끼로 가득한 이 그림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그림에 딸린 글은 딱 한 줄이다. “절대 빨간 양말 한 짝을 빨랫줄에 남겨두지 말 것.”

호주 작가 숀 탠의 그림책 ‘여름의 규칙’ 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긴장감을 자아내며 보는 이를 고민에 빠뜨린다. 왼쪽 면에 글 한 줄, 오른쪽 면에 그림 한 장이 짝을 이룬다. 그림은 기괴하고 글은 모호하다. 공룡을 닮은 로봇, 고생대 생물처럼 보이는 파충류, 무시무시하게 큰 토끼… 절대 달팽이를 밟지 말 것, 절대 비밀번호를 잊지 말 것, 언제나 금속 절단기를 갖고 다닐 것…. 장면마다 등장하는 두 아이가 어떤 관계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떤 장면에서는 친구 같고 어떤 장면에서는 지배와 복종의 차가운 관계처럼 보인다. 매번 보이는 까마귀의 정체도 아리송하다. 까마귀떼가 점점 불어나며 글 없이 펼침면 전체를 차지하는 뒷부분에 가면 공포스럽기조차 하다.

본격적인 그림책에서 그림은 글이 말하지 않은 많은 비밀을 품고 있지만, 이 책은 더욱 그렇다. 글과 그림 사이에 많은 것이 생략돼 있다. 그 공백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점점 조여드는 긴장감에 등이 서늘하다가 어느 순간 머리칼이 주뼛하기도 한다. 그림책에서 접하기 힘든 이런 느낌은 갈라진 대륙의 이 쪽에서 저 쪽으로 건너 뛰려고 할 때 느끼는 두려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예쁜 그림과 분명한 메시지에 익숙한 독자라면 당황스러울 만큼 낯선 그림책이다.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깊고 무거운 어떤 것이 줄곧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떻게 해석하든 한마디로 환상적인 그림책이다.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는 걱정은 거두시길. 아이들은 어른보다 명민하다. 호주 어린이책위원회(CBCA)가 선정한 2014 올해의 그림책 수상작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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