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상표·기호품에 애착 표현
과거의 삶 긍정적으로 재평가
독일 통일은 성공했는가. 우문에 현답은 어렵다. 역사를 항상 성공 아니면 실패로 나누어 보는 이분법은 사유를 중단시키고 성찰을 억누른다. 1989~90년 독일통일은 민주적 절차와 제도적 형식에 주목하면 충분히 모범적이다. 동서독의 결합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고 공산주의 동독이 평화적으로 체제를 전환한 과정이 그저 부럽다.
그러나 통일 당시 애초 서독 정치인들이 동독 주민들에게 쏘아 올린 무지갯빛 번영의 약속을 기억하면 동독 지역의 지금 현실은 한참 안타깝다. 공산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며 동독 주민들이 품었던 기대는 통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잿빛으로 흩어져 버렸다. 급속한 체제이식과 흡수 통일 과정에서 동독 주민들이 겪었던 인간적 희생과 사회적 비용은 결코 잊혀 질 수 없다.
알려진 대로 통일 후 동독 지역은 서독 지역과 비교해 모든 부문에서 뒤져 있고, 동독 주민들은 이등시민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독 지역의 일인당 국내총생산은 서독의 67%에 그치고 실업률은 여전히 서독의 두 배에 달한다. 게다가 정치와 행정, 학문과 언론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서독 출신들의 일방적 헤게모니와 승자적 관점이 지배한다.
이런 동서독 지역의 불균형한 삶의 현실을 두고 ‘그래도 과거보다 낫지 않나’라고 한다면, 그것은 민주혁명으로 통일을 이끈 동독 주민의 상처에 덧칠하는 꼴이 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수년 전 “많은 영역에서 동서독 간 기회의 평등이 이뤄지기까지 아마도 4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사회적, 내적 통일의 ‘완성’은 1990년 통일 과정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동서독 주민의 불균형한 삶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동독 주민들의 대응이다. 통일 후 동독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고유한 자아상과 인지 방식, 즉 ‘오스탈기’(Ostalgie)를 드러내며 정체성을 발전시켰다. 오스탈기는 오스텐(Ostenㆍ동쪽)과 노스탈기(Nostalgieㆍ향수)의 합성어로 ‘동독 시절에 대한 향수’를 뜻한다.
오스탈기는 옛 동독 소재의 영화나 소설, 동독 시절의 유행가, 동독 관련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확인된다. 또 오스탈기-파티, 록음악 축제, 동독 시절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특히 동독 시절 상표의 생필품과 기호품들에 대한 애착으로 표현된다. 이런 ‘동독 제품’은 ‘잃어버린 고향(조국)’을 대신해 삶에 연속성을 안겨 주고 새로운 기억과 경험 공동체를 가능하게 한다. 동독 주민들에게 ‘동독 제품’은 단순히 복고적 기호의 차원을 넘어 동독에서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을 만들어내고(우리가 만든 것이 다 나쁘지는 않았어!) 자의식을 강화해준다.
흔히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오스탈기는 옛 동독 공산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며 내적 통일을 막는 장애물도 아니다. 동독 주민들이 특정한 과거의 삶을 새롭게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자신의 오랜 삶의 가치와 자의식을 집단적 정체성으로 발전시켜 통일 독일에서 제 자리를 찾아가려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오스탈기가 등장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통일 후 서독인들이 동독인들의 지난 경험과 삶을 인정은커녕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스탈기는 동독인들의 고유한 삶을 담지 못했던 통일 독일의 주류 언론과 정치에 대한 항의이자 도전이기도 하다.
오스탈기는 통일이란 법제도의 이식이나 경제 통합으로만 끝나지 않는 지난한 과정임을 잘 보여준다. 통일은 화려한 정치 무대에서 양복 입은 중년의 신사들이 서명하는 행위의 차원을 훌쩍 뛰어 넘는 것이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기억, 가치와 지향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고 서로 그 삶의 자락들을 연결시키고 소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통일은 완성되는 것이다.
이동기 강릉원주대 교수ㆍ독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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