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제주박물관에서 강연을 하게 되어 제주도에 다녀왔다. 강연을 마친 후 닷새 동안 제주도의 동쪽과 서쪽을 오가며 머물렀다. 세 곳의 숙소에서 며칠을 보내는 동안 제주 여행의 달라진 풍경이 조금씩 다가왔다. 우선은 제주의 숙소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용객실이 있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나 비싼 펜션 뿐 아니라 혼자 오는 여행자를 위한 중급 숙소들이 제법 생겼다. 보통 거실과 주방 공간을 공유하는 방 3, 4개짜리 게스트하우스로 가격은 6만~8만 원 정도. 내부는 소박하지만 깨끗함은 고급 숙소에 못지않다. 손님은 주로 모녀간이거나 혼자 온 30, 40대 여성들. 20대가 주로 찾는 게스트하우스의 활기 넘치는 소란함보다는 조용하면서도 깔끔한 곳을 찾는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은 목소리가 높지 않았고, 저마다 짐 속에 책 한 권을 넣어온 것 같았다.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마음이 맞으면 함께 주변을 둘러보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임을 충분히 누릴 줄 아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었다.
세 곳의 숙소 모두 나름의 운영 규칙이 있었다. 바비큐를 할 수 없고, 방에서 술이나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건 공통적이었고, 공용 공간의 소등시간이 정해진 곳도 있었다. 인터넷 상에서는 그런 까다로움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글도 간혹 보였다. 내가 찾아간 숙소들도 ‘주인이 까칠하다’는 평을 듣는 곳들이었다. 하지만 까칠하다는 평을 감수하며 주인장이 고수하는 그 규칙들 덕분에 나는 비슷한 취향의 여행자들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바비큐 그릴 앞에서 왁자지껄한 음주를 즐기는 모습 대신 거실에서 책을 읽거나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숙소를 운영하는 주인들의 모습 또한 어떤 공통점이 있었다. 나이는 대부분 30, 40대. ‘손님은 왕’이라는 태도로 감정 노동을 감수하지는 않는다. 지나친 배려로 손님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지만 너무 무심해서 마음을 쓸쓸하게 하지도 않는다. 딱 적당한 거리감과 관심이었다. 혼자 찾아와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며 충전의 시간을 보내는 손님과 주인들 사이에는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잡아 가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오후, 숙소 근처의 용눈이 오름을 올랐다. 오후의 기우는 햇살을 받은 가을 억새가 바람에 하늘거렸다. 공기는 보송보송 했고, 하늘은 맑게 개어 완연한 가을빛이 사방에 넘쳐났다. 고즈넉함을 즐기며 걷는데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건장한 청년 넷이 크게 틀어 놓은 힙합 음악의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오름을 오르고 있었다. 잔소리쟁이 중년 아줌마로 찍히고 싶지 않던 나는 걸음을 빨리 했다. 하지만 음악은 점점 커지며 나를 쫓아왔다. 결국 그들과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예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말했다. “음악이 좋네요. 그래도 가끔 이런 곳에서는 음악을 끄고 걸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말을 하면서도 험한 소리를 듣게 되지나 않을지 겁이 났다. 하지만 청년들은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더니 바로 음악을 껐다. 들판은 다시 고요함을 되찾았고, 가을 햇살이 청년들의 어깨 위로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서울에 돌아온 다음날, 내가 사는 동네의 뒷산을 올랐다. 솔숲을 흔드는 바람소리나 청아한 새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걷고 싶은 내 바람은 그날도 여지없이 깨졌다. 시끌벅적한 라디오 방송이나 구성진 비음의 트로트 노래가 자주 들려왔기 때문이다. 주로 혼자 걷는 어르신들이 틀어놓은 음악이었다. 청년들에게는 음악을 꺼달라고 요구했던 내가 어르신들께는 감히 그러지 못했다. 그저 발걸음을 빨리 해 앞서갈 뿐. 어르신들이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사용해주시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우리는 유례없이 힘든 시기를 다 함께 건너가고 있다. 너나할 것 없이 생존 자체가 불안해서인지 점점 마음의 여유를 잃어 간다. 이런 때일수록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배려와 격려에 의지하며 견뎌갈 수밖에 없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동네의 산이나 여행지의 숙소에서 타인을 위한 작은 배려를 행하는 것. 어쩌면 일상의 피로감을 부쩍 줄일 수 있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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