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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수행 깊이, 기계는 알고 있다?

입력
2014.11.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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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출신 불교학자 김성철 교수

감각의 흐름 주시하는 수행법 '사띠'

능력치 측정할 수 있는 기계 개발해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불교의 사띠(sati) 수행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계가 개발됐다. 치과의사 출신 불교학자인 김성철 동국대 교수(경주캠퍼스 불교학부)의 작품이다. 사띠는 불교에서 ‘알아차림’ ‘마음챙김’을 뜻한다. 시간의 최소 단위인 찰나에 느껴지는 모든 감각의 흐름을 주시하는 수행 방법이다.

그렇다면 1찰나 동안 몇 가지 촉감이 인지될까. 이를 헤아린다면 수행의 수준도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김 교수가 품은 의문이었다. 사띠 수행력을 측정, 훈련할 수 있는 기계인 ‘촉각자극분배기’를 고안한 계기다.

김 교수는 “짧은 순간에 몸의 여러 곳에 인위적인 자극을 주고 이를 인지하는 정도를 측정하면 사띠 수행력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충분한 시간이 보장된다면 자신에게 느껴지는 촉감을 모두 파악할 수 있겠지만, 자극의 시간이 짧다면 인지하는 촉감의 숫자는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에 근거했다. 불교에서 보는 찰나는 75분의 1초. 이론대로라면, 경지에 오른 수행자는 1초를 75로 쪼갠 순간에 느껴지는 자극을 모두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자극의 방법은 진동을 선택했다.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소형진동모터를 이용해서다. 김 교수는 “인체에 무해하고 균일한 자극을 일정 시간 지속시킬 수 있는 최적의 촉각자극기”라고 설명했다.

김성철 동국대 교수가 수행력을 측정, 훈련할 수 있는 기계로 개발한 '촉각자극분배기'. 휴대전화에 쓰이는 소형 모터를 몸에 부착해 진동을 준 뒤 일정 시간 동안 어느 곳에서 자극이 느껴졌는지를 검사하는 방식이다. 김성철 교수 제공
김성철 동국대 교수가 수행력을 측정, 훈련할 수 있는 기계로 개발한 '촉각자극분배기'. 휴대전화에 쓰이는 소형 모터를 몸에 부착해 진동을 준 뒤 일정 시간 동안 어느 곳에서 자극이 느껴졌는지를 검사하는 방식이다. 김성철 교수 제공

측정 방식은 실험 대상자의 몸 구석구석에 10개의 촉각자극기를 붙인 뒤 촉각자극분배장치를 통해 자극의 시간과 강도를 설정해 자극을 가하는 형태다. 실험 대상자는 일정 시간 동안 몸의 어느 곳에서 자극이 있었는지를 답하면 된다. 김 교수는 “한 사람당 스무 번씩 방식을 바꿔 실험을 했더니 신뢰성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만든 기계에서 현재 실험이 가능한 자극 시간은 최소 0.5초, 최대는 4초다. 여섯 살 어린이부터 성인 불교 수행자에 이르기까지 10명에게 실험 한 결과 0.5초 동안 8개의 자극을 맞힌 사람이 최고치였다. 김 교수는 “자극의 시간을 더 줄여 기계를 발전시킬 생각”이라며 “수행능력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려면 향후 더욱 세심한 실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촉각자극분배기를 개발하기까지 시행착오도 여러 번이었다. 아이디어는 10년 전부터 김 교수의 머릿속에 있었지만 구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김 교수는 “자극의 방식을 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전자석의 힘을 이용해 살갗을 치도록 하는 방식, 저주파를 근육에 보내는 방식 등을 시도했지만 기술적으로 복잡하거나 피험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어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차 진동 방식을 떠올렸고 적합한 소형 모터를 찾던 중 휴대전화에 쓰이는 진동 모터를 발견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7월 기계를 완성해 올해 2월 특허 출원을 신청했다.

물론 수행의 정도를 계량화한다는 것은 민감한 일이다. 김 교수는 “수행은 주관적인 체험이기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활용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촉각자극분배기를 이용해 주의집중 훈련을 하는 것 자체로도 수행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게 김 교수의 판단이다.

나아가 주의력 부족에서 비롯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나 치매의 진단 및 치료에도 이 기계가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김 교수는 내다봤다. ADHD는 불교 수행에서 장애 가운데 하나로 꼽는 마음이 산란한 ‘도거’의 극심한 상태와 비슷하다. 김 교수는 “이론적으로 보면 촉각자극분배기로 주의력 집중 훈련을 하면 ADHD 치료에 도움이 되고 촉각의 인지를 통한 새로운 신경망 형성으로 치매 치료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촉각자극분배기 개발은 불교와 과학을 접목시키는 노력의 일환이다. 김 교수는 올해 부처의 가르침을 뇌 과학ㆍ진화생물학과 연관 지어 풀어낸 ‘붓다의 과학이야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 기계를 만들면서도 김 교수가 감탄한 대목이 있다. 불교의 찰나가 현대과학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인지심리학계에서 내놓은 ‘인간이 시각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은 13㎳(밀리세컨드ㆍ1,000분의 1초)라는 연구결과 때문이다. 불교의 찰나인 75분의 1초는 0.013333초로 13.3㎳다. 김 교수는 “두 시간 단위가 아주 흡사하다”며 “옛 수행자들의 마음의 흐름에 대한 통찰이 현대과학적으로도 훌륭하다는 증거여서 놀랍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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