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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초이노믹스 2.0

입력
2014.11.0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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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에 가로막힌 초이노믹스

돈 풀어대는 정책은 이제 일단락 해야

남은 1년, 증세 임금 등 실질이슈 다뤄야

월스트리트저널이 사설(4일자)에서 '초이노믹스(Choinomics)'라고 표기한 건 다소 뜻밖이었다. 일본 아베노믹스와 유사성을 부각시켜 기사를 쓰다 보니 초이노믹스란 표현을 쓴 것 같은데, 어쨌든 최경환 부총리 취임 이후 국내 언론이 좀 억지스럽게 만들어 낸 이 용어는 이젠 월가도 잘 아는 단어가 되었다. 초이노믹스는 당분간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 브랜드로서 국제적으로도 꽤 자주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사실 초이노믹스와 아베노믹스는 '팽창정책'이란 공통분모에도 불구하고, 현실 경제에선 충돌요소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 입장에서 아베노믹스는 아주 불편한 정책인데, 이는 초이노믹스가 기대했던 경기부양 효과가 상당 부분 아베노믹스에 의해 좌절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윤전기를 돌려 돈을 찍어 내겠다’는 취임 전 약속을 2년 내내 한치 오차 없이 지켜오고 있다. 지난 주엔 미국이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한(10월 29일) 바로 이틀 뒤 오히려 양적완화 추가 확대를 발표하는 ‘깜짝 쇼’까지 선보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아베 정부의 통화살포는 거침없는 엔저(低)로 이어졌고, 이는 초이노믹스를 통해 겨우 숨통을 트려 하고 있던 한국 경제를 다시 질식시키는 양상이다. 한국 경제의 부진을 환율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겠지만, 엔저가 대형 악재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아베노믹스가 아니었다면, 초이노믹스는 지금보다 훨씬 장밋빛 경제지표들을 생산해내며 국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고 있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엔’과 ‘원’의 차이다. 통화정책을 통해 스스로 환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일본과, 그저 엔과 달러의 움직임에 웃고 울어야 하는 한국의 차이다. 국내에 축적된 자본이 워낙 많아 얼마든지 나라 밖으로 돈을 퍼내도 문제가 없는 일본과, 증시 외국인 자금이 조금만 빠져나가도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는 한국의 차이이기도 하다. 최 부총리를 가장 괴롭히는 사람은 야당 ‘저격수’ 박영선 의원이 아니라 아베 총리임에 틀림없다.

나는 최 부총리가 취임 초 대대적 재정확대정책을 취한 건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춘 것 또한 잘했다고 본다. 당시엔 정부가 워낙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재정정책이든 통화정책이든 경기를 살리기 위해 뭔가 움직이고 애쓴다는 신뢰감을 국민들에게 주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4개월 가까이 흐른 지금 돈의 심리요법은 지속되기 힘들게 됐다. 뭔가 실제로 달라지는 모습, 뭔가 더 큰 골격의 비전이 나와야 하는데 거기서 한발 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민생법안을 틀어쥐고 있는 국회를 탓하고 싶겠지만, 입법 과정이야 어찌됐든 국민들은 결과물이 보고 싶을 뿐이다. 오히려 초이노믹스는 초반에 국민들의 기대수준을 워낙 높여놓았기 때문에, 더 큰 실망감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최 부총리의 ‘임기’는 이제 길어야 1년 정도다. 임기직은 아니지만 어차피 2016년 4월 총선에 출마할 테니, 법정 사퇴시한인 90일전 그러니까 1월 이전엔 부총리에서 물러날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엄밀히 말해 초이노믹스는 후임자에게 큰 짐이 되는 정책이다. 늦어도 내년 하반기면 미국이 금리인상에 나설 테고 최경환 팀이 뿌린 돈을 차기 팀이 회수하게 될 텐데, 긴축은 팽창보다 백배는 힘들다. 그새 경제가 획기적으로 좋아질 리도 없고 정권 임기는 후반부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과연 출구전략을 제대로 쓸 수나 있을는지.

아베노믹스가 가로막고 있는 한, 돈 푸는 초이노믹스는 이제 마감해야 한다. 힘있는 경제수장이니까 그것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꽤 있을 것이다. 좀 더 피부에 와 닿고, 좀 더 근본적 문제를 건드리는 ‘초이노믹스 2.0’을 내놓을 수 있다고 본다.

참고로 아베 정부는 재정확충을 위해 정권의 명운이 걸어야 한다는 소비세 인상을 관철시켰고 지금 2차 인상을 준비 중이다. 국민들의 실질소득 증대를 위해 법정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면서, 기업들에게도 급여 인상을 강력 주문해 관철시켰다. 아베노믹스하면 그저 돈 찍어내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결코 그게 다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성철부국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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