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이 살인자를 막긴 어렵다. 그에게 가벼운 건 자타 막론 생명 자체다. 목숨이 교환되는 것도 아니다. 죗값은 국가의 면죄부 구입에 쓰인다. 산 자에게 필요한 건 복수보다 보호다.
“사형제를 지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그들은 사형이 국가의 책무인 것처럼 말한다. 중범죄에 대해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보복감정을 충족시키고 사회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사형의 효과를 냉정하게 따져보면 사형이 집행된다고 해도 실제로 달라지는 것을 찾기 어렵다. 기존의 여러 사회과학적 연구들은 사형의 범죄억제력이 입증된 바 없다고 입을 모아왔다. (…) 사형집행이 피해자 가족들의 사회복귀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효과가 의심되는 사형제에 집착하는 것은 국가다. (…) 사형이 집행돼도 흉악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피해자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 사형제로 이득을 보는 것은 국가뿐이다.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사형제야말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기 때문이다. (…) 다양한 범죄대책이나 피해자보호대책을 강구할 수 없는 무능하고 정당성 없는 국가에게 사형은 참으로 편리한 통치수단이 아닐 수 없다. (…) 반면 사형폐지론자들이나 사형폐지국들은 범죄와 범죄피해자 문제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다. (…) 사형을 통한 복수와 응징이라는 단순하고 효과 없는 방법에 반대할 뿐이지, 범죄가 발생하는 구조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정책이나 시민적 연대성을 강화하기 위한 근본적 사회개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선도적인 사형폐지국들에는 대개 범죄피해자 가족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물질적ㆍ심리적 지원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 (…) 사형폐지론은 단순히 사형제도를 없애자는 소극적인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범죄를 막지 못하고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은 현실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돼야 한다. 사형의 사이비효과로 시민들을 현혹시키려는 국가에 맞서, 복수와 응징의 악순환을 끊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며, 범죄로 고통받는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형제 폐지의 의미(한국일보 ‘아침을 열며’ㆍ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 전문 보기
“검찰의 사형 구형이 부쩍 늘어난 착잡한 현실 앞에서 ‘사형은 필요악인가’라는 묵은 난제를 떠올리게 된다. (…) 올 봄 방영된 드라마 ‘신의 선물-14일’에는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대통령이 국면전환을 노려 사형 집행을 결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일각의 사형 집행 요구도 뒤따르지만 17년째 지속된 ‘사형 집행 잠정중단’을 뒤집는 극단적 상황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사형제 존폐 논쟁의 주된 쟁점은 범죄예방 효과와 국민의 법 감정이다. 사실 전자는 학계에서도 견해가 엇갈린다. (…) 결국 남는 것은 국민의 법 감정이다. 최근 온 국민을 경악케 한 몇몇 사건에서 검찰이 뒤늦게 살인죄를 적용하고 사형을 구형한 데도 들끓는 여론의 힘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억울한 죽음을 또 다른 죽음으로 갚는 것이 진정한 사법정의일까. 각자의 주장을 펴기 전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지난 10일 ‘세계 사형폐지의 날’을 맞아 낸 성명을 한번 읽어 보자. “누구도 ‘네 부모 혹은 자식이 범죄로 그렇게 죽었어도 사형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참혹한 질문을 가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에 있다.”
-사형, 필요악인가(10월 30일자 한국일보 ‘지평선’ㆍ이희정 논설위원) ☞ 전문 보기
우린 모두 호갱이었다. 싼 고가(高價) 휴대폰 따윈 없다. 보조금은 통신료에 보태진다. 불합리 소비 조장은 시장 생리다. 부지런해도 기어이 속인다. 기만 구조 정상화가 법 취지다.
“애당초 시장에 기대를 한 게 순진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한 달째인 1~2일 이동통신업체들이 단통법을 뭉개려는 공격을 보란 듯이 감행했다. 79만원짜리 아이폰이 단통법 규정상의 정상가보다 30만~40만원 싼 10만~20원대에 거래됐다. 이통업체들이 제품 출시를 ‘D데이’로 정해 유통점에 거액의 판매장려금을 내려보냈다는 얘기가 나돈다. (…) 이통3사는 한 해 마케팅비로 영업이익의 2배가 넘는 8조원대를 쓴다. 단통법이 안착하면 중저가 시장이 대세가 되고, 저수익 구조가 고착화할 것이란 것을 이미 머릿속에 넣고 있는지 모른다. (…) 단통법은 의도와 달리 절름발이로 입법화됐다. 그럼에도 통신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게 적지 않다. 법 시행 이전보다 저가 단말기와 2만~4만원대의 중저가 요금제를 찾는 이가 줄곧 늘고 있다. 중고폰의 개통도 많아졌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년 약정이 끝나는 이용자가 매월 60만~100만명이 나오는 상황을 고려하면 앞으로 중저가요금 가입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가 단말기에 혹해 고액 요금제에 가입하기보다 사용 패턴에 맞춰 쓰는 현상이 자리할 것이란 말이다. 이렇게 되면 다달이 내는 요금에서 단말기 값을 챙겨 가는 ‘조삼모사’ 마케팅도 자리를 잃게 된다. (…) 정책 당국은 도출된 시장 변수를 종합적으로 챙겨 보완책을 준비하되 법이 추구하는 큰 틀은 바꿔선 안 될 것이다. 아이폰 사태에 대한 제재도 보다 강력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단통법 논란과 별개로 시장 정상화의 근간을 뿌리째 흔든 불법이다. 이통업체들이 잘못된 마케팅 노하우를 카드로 꺼내 든다면 아이폰 사태에서 보듯 시장 안정화의 산통을 깰 게 뻔하다. 소비자들도 이 제도가 시장에 정착하게 될 1년 정도는 기다리는 게 맞다. 스마트폰은 이제 생활필수품이다. 너도나도 고가 단말기를 찾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통법은 보다 긴 안목에서 지켜봐야 한다.”
-‘단통법’은 악법인가(서울신문 ‘서울광장’ㆍ정기홍 논설위원) ☞ 전문 보기
“정부가 국민 가계(家計)의 통신비 부담을 줄이겠다고 만든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정부 시장 개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 단통법은 휴대폰 보조금 규모를 투명하게 공개해 소비자 차별을 없애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정보력이 뛰어나거나 발품을 열심히 파는 소비자, 혹은 운(運)이 좋은 소비자가 그렇지 못한 소비자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받는 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입법 취지와 달리 단통법은 휴대폰 보조금 혜택을 대폭 줄여버렸고 단말기 유통구조를 개선하기는커녕 단말기 유통시장 자체를 완전히 죽여버렸다. 정부가 법으로 보조금 상한액을 정하고 전 국민에게 똑같이 보조금을 지급하라고 강제하니 통신업체들이나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딱 남들만큼만 써야 하는 보조금을 굳이 지급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 그래서 일부 시민단체들은 단통법을 ‘단지 통신사만 배 불리는 법’이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하고 있다. 사실 휴대폰 보조금은 스마트한 소비자와 그렇지 못한 소비자를 차별하는 문제를 제외하고는 소비자에게 이득이 훨씬 많다. 통신 기업들이 가입자 유치를 위해 과당 경쟁을 하면 할수록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혜택(보조금)이 커진다. 또 통신업체들과 삼성전자ㆍLG전자 같은 돈 많은 대기업이 경쟁을 하며 광고ㆍ마케팅 비용을 퍼부어 주어야 통신사 대리점이나 광고ㆍ인쇄 같은 대표적인 골목상권 업종들이 숨통을 틀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단통법은 이 내수 불황에 대기업들이 돈을 쓰게 하지는 못할망정 거꾸로 기업들의 돈줄을 틀어쥐는 효과만 내고 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정부가 시장(市場)의 가격 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게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가 있다. (…) 광화문 한가운데 있는 대리점의 TV 가격과 용산 전자상가의 가격이 똑같다면 누가 발품을 들여서 용산이나 테크노마트 같은 곳을 찾겠는가. (…)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단통법은 완전히 거꾸로 갔다.”
-소비자만 골탕먹는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11월 1일자 조선일보 ‘데스크에서’ㆍ조형래 산업1부 차장)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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