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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톡2030] '뚱뚱한 청춘' 고단함과 당당함 사이

입력
2014.11.0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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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면접관 조언 가장한 악담 "살 빼고 와라… 다른 곳도 안 될 것"

비정상 취급 시선과 차별에 주눅, 버스 탈 때 등 일상생활 타인 눈치

'비만=나태' 편견에 쉽게 비난, 일종의 폭력이자 혐오 범죄

한국사회는 ‘뚱뚱함’에 가혹하다.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우리는 유독 심하다. 남성 보다는 여성, 나이든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에게 더욱 비수를 꽂는다.

뚱뚱함은 단지 체형의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기관리를 못하는 사람, 뭔가 비뚤어진 사람, 결국 열등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개그 프로그램을 봐도 뚱뚱함이 웃음의 소재가 되지, 마른 체형은 별로 다뤄지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다이어트에 몰입한다. 우리나라 인구 4명중 1명, 특히 20대와 30대는 2명 중 1명이 다이어트 중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살을 빼기 위해서라면 검증 받지 않은 약물에 성분을 알 수 없는 주사, 위를 절제하는 수술까지도 감내한다.

여성복 사이즈를 보면 쉽게 확인된다. 66사이즈가 표준을 나타내는 M(Middleㆍ중간)사이즈이지만, 66을 입는 여성은 '뚱뚱' 아니 최소한 ‘통통’한 것으로 간주된다. 아마 모두가 44사이즈에 맞는 체형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웃지 못할 별의별 사건도 다 발생한다. 2012년12월 광주 서구의 나이트클럽에서는 남성이 20대 여성에게 ‘뚱뚱하다’며 폭력을 휘둘렀고, 앞선 2010년 10월에는 서울 길동에서 택시기사가 뚱뚱한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었다며 20대 주부들을 폭행했다.

단지 살이 쪘다는 이유만으로 쏟아지는 모욕과 경멸을 감내해야 하는 한국사회. ‘뚱뚱한 청춘’으로 산다는 것의 고단함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1일 시작한 SBS드라마 ‘미녀의 탄생’은 뚱뚱한 체격의 주인공이 전신성형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 거듭난 후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여성은 주인공에게 ‘거울도 안 보고 사냐’며 질책한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김모(27ㆍ여)씨는 “마치 내 얘기 같았다”며 아픈 경험을 털어놓았다. 중학교 때 짝사랑하던 남학생이 김씨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걔는 거울도 안보냐’고 비아냥거렸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까운 친구들조차 평소에 살 좀 빼지 그랬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충격을 받은 김씨는 살을 빼기 시작했지만 무조건 굶다 참지 못해 다시 과식을 하는, 단식과 폭식을 반복하다 결국 건강만 해쳤다. 김씨는 “살이 쪘다는 이유만으로 왜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상대방은 걱정스러운 마음의 조언일지 몰라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살 빼라는 말은 언어폭력에 가깝다”고 전했다.

살 때문에 입사면접에서 낙방하는 건 흔한 사례다. 177㎝의 키에 110㎏의 몸무게인 남모(32)씨는 회사 면접관에게 ‘자기 관리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이어 면접관은 ‘살부터 빼고 오라’‘살을 빼기 전엔 여기뿐만 아니라 그 어디도 취직이 안 될 것’이라고 '조언'까지 했다. 남씨는 면접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큰 체격 때문에 신경 쓰이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서 가곤 한다. 큰 자신의 몸 때문에 옆 사람이 피해를 볼까 봐 미안해서다. 또 여름에는 혹여 다른 땀냄새가 날 세라 수시로 샤워를 한다. 다시 말해 일상생활에서도 필요 이상으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됐다는 게 남씨의 얘기다.

체형 때문에 왕따를 당한 사례도 있다. 남모(25ㆍ여)씨는 “초등학교 때 몇몇 친구들은 나와 손이 닿으면 ‘뚱뚱보균’이 옮는다며 말도 안 섞으려 했다. 중학교 때는 뚱뚱한데 길에 나다니지 말라고 면박을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도이씨가 자신이 판매하는 의류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나나빅 제공
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도이씨가 자신이 판매하는 의류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나나빅 제공

김도이(30ㆍ여)씨는 이런 사회적 편견에 맞서 '살찐 몸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모델을 한다는 건 적어도 체형 컴플렉스는 없어졌다는 뜻. 하지만 그 역시 과거 사회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겉으로는 자신감 있게 지냈지만 속으로는 늘 남들의 신경이 신경 쓰였다는 것. 수술을 제외하고는 약물이나 주사, 구토 등 해보지 않은 다이어트가 없을 정도였다. 결국 3개월 만에 40㎏을 감량했지만 다시 살이 찔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다 우울증이 생겼고, 영양결핍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결국 김씨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접고 스스로를 진심으로 격려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예전에는 타인의 시선이 두려웠지만 지금은 누가 날 쳐다보면 ‘내가 예쁘게 옷을 입고 있어서 쳐다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기최면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빅 사이즈 의류사업도 겸하고 있는 김씨는 “고객들 중에서도 ‘뚱뚱한데 이런 옷을 입어도 될까요’라고 물어오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양한 색상의 옷들을 판매해도 결국 몸을 가리는 검은색의 의류가 가장 판매량이 높다는 것. 덩치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는 옷 보다는 몸매를 가리는 옷을 주로 선택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김씨는 “우리나라에서는 비만을 비정상으로 취급하지만 실은 하나의 특징에 불과하다. 코가 높다거나 키가 큰 것과 같은 하나의 신체적 특징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개그우면 이국주 역시 김씨와 비슷한 조언을 했다. 지난 9월 한 강연회에서 그는 “당당하게 살아가자”며 “내가 살을 뺀다고 전지현이 될 수 없듯이 장점을 꺼내 보여주자”고 주장했다. 몸매를 신경 쓰지 말고 즐겁고 맛있게 먹자고 노래하는‘식탐송’등을 부르는 이씨는 자신의 외모를 개그소재로 삼으면서도 아름다움의 다양성에 대한 소신 있는 발언과 긍정적인 태도로 오히려 더 각광받고 있다.

플러스 사이즈를 위한 패션 잡지 '66100'의 기획자 김지양씨가 창간호를 소개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플러스 사이즈를 위한 패션 잡지 '66100'의 기획자 김지양씨가 창간호를 소개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66100’이라는 평균보다 큰 체형의 여성들을 위한 패션잡지도 6월 창간됐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인 김지양씨가 펴낸 이 잡지는 한국 기성복들이 여성은 66사이즈, 남성은 100사이즈까지만 제작하는 세태에 반기를 든다.

이처럼 몸매에 상관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목소리가 한국사회에서도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은 미약하다. 비만이 나태함으로 인한 질병이라는 편견이 이미 뿌리깊게 자리잡아 불합리한 차별을 당해도 본인의 잘못으로 돌려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비만은 병이 아니라는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됐다. 하지만 살이 쪘어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이들도 있다.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당뇨, 지방간 등 비만으로 인한 병이 없다면 얼마든지 건강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이 같은 성인병은 비만 때문이 아니라 다이어트로 인한 스트레스로 초래된 질병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작정 날씬한 몸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비만인 차별에 대해 오창익 인권연대 국장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이해와 관용 부족에서 빚어지는 일종의 혐오범죄”라고 비판했다. 또 “게을러서 비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살이 찌는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편견만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도 지적했다.

전혼잎기자 hoi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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